한국 외교부가 왠지 시끄러운 모양새다. 지난해부터 외교관들의 성 비위나 갑질 행태가 감사 등으로 드러나면서 문제가 된 사례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더니, 최근에는 현직 대사와 외교부 간 갈등이 한국 언론에 연이어 보도된 게 심상찮아 보인다.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이 지난주 기사로 전한 내용은 이렇다. 주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대한 감사에서 김도현 대사가 직원들에게 고압적 태도와 폭언 등 ‘갑질’을 했다는 점과 현지 골프장 개장 행사에 참석하면서 항공권과 호텔 등을 제공받은 게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 경고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외교부가 그를 본국으로 소환, 징계위원회에까지 세우기로 하는 등 중징계 수순을 밟자 김 대사가 자신에 대한 불순한 의도의 ‘표적 감사’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현직 공관장이 본부와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나오는 상황이 파문으로 번질 조짐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사태가 외교부 내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간 묵은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여러 언론 보도에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김 대사가 15년 전 노무현 정부 당시 발생했던 이른바 ‘외교부 대통령 폄하 투서 사건’의 핵심 당사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건은 2004년 외교부 북미국 과장급 간부가 사석에서 ‘영어도 못하고 미국도 안 가본 인사들이 무슨 대미 외교를 하느냐’며 당시 청와대의 이른바 ‘자주 외교’ 정책을 비판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외교부가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었다. 발언 내용이 청와대에 투서로 들어가 발언 당사자는 물론 북미국 책임자들과 외교부장관까지 줄줄이 경질됐는데, 그때 투서를 한 장본인이 바로 당시 서기관이었던 김도현 대사였다고 한다.
이후 김 대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보수정권에서 이른바 ‘친노 외교관’으로 찍혀 인사에 불이익을 받자 공직을 떠났고, 삼성전자에서 중역으로 근무하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다시 바뀌자 지난해 특임 재외공관장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베트남 대사에 발탁됐다는 배경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눈길을 확 끄는 것은 이번 파문을 접한 베트남 한인사회가 쫓겨날 위기에 처한 김 대사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사가 외교부 내에서는 돌출행동 스타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현지 한인들과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일 잘하는 외교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이다.
하노이한인회 등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성명 내용이라고 보도된 것을 보면 “김도현 대사만큼 발로 뛰며 교민들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외교관을 본 적이 없다”며 “김도현 대사야말로 모든 외교관의 표상이요, 외교관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라고까지 치켜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사달을 일으킨 공관장이 현지 한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상황은 전례가 드문 케이스여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위 성명을 보니 김 대사가 진심으로 베트남 한인들과 현지 진출 기업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주기 위해 쉼 없이 발로 뛰며 챙겨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남가주 한인사회의 경우 이런 재외공관장 복이 있었을까. 기자로서 그동안 경험한 LA 총영사가 현직까지 포함해 모두 10명인데, 곰곰이 따져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예외는 15대였던 김명배 총영사인데, 그는 재임 당시 남가주 한국학원 살리기 등 한인사회 현안들을 발 벗고 나서서 챙기고 성공시켜 이른바 ‘발총’(발로 뛰는 총영사)으로 유명했고, 한인들 사이에 신망도 높았다.
반면 벌써 3년 임기의 절반 가까이 돼 가는 현 LA 총영사가 한인사회와 친밀하게 소통하며 애로를 해결해주기 위해 애쓴다는 평가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광복절 행사를 놓고 한인회와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던 데다 한인사회 현안에 대처하는 것도 좀 ‘오버’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남가주 한국학원 사태와 관련해 주말 한글학교 지원금까지 중단되도록 하려는 것은 너무 ‘무리수’였다. 얼마나 많은 한인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한국학원 한글학교를 찾고 있고, 교사들이 박봉에도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베트남 대사 파문을 보며 진정한 재외공관장의 자세에 대해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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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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