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요일 아침에
▶ 베이비부머 은퇴로 수축사회 진입
세수는 주는데 복지 비용은 봇물
일본 잃어버린 20년 우리 눈앞으로
서비스산업 규제풀어 기업살려야
지하철 안.
몇 안 되는 노약자 좌석이 일반석으로 변해 두 어린이만 앉아 있다.
그 옆 일반석이었던 자리들은 모두 경로석으로 바뀌어 많은 노인이 가득 앉아 있다. 12개의 약자 배려석이 모두 일반석으로, 42개의 일반석은 모두 약자 배려석으로 뒤바뀐 세상이다. ‘이런 모습, 상상은 해보셨나요?’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지난 2006년 출산 유도 공익광고의 한 장면이다. 10여년 전의 이 얘기가 이제는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아이들보다 노인이 많은 나라, 출산율이 1미만으로 세계 최저인 나라,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 중인 나라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55~1964년의 전후 베이비붐세대가 2015년부터 은퇴를 시작하면서 ‘성장 사회’에서 ‘수축 사회’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의 초입에 서 있다. 베이비붐세대가 학교에 가면 초중고가 늘어나고 대학에 가면 대학이 팽창하고 직장에 가면 경제가 성장하고 집 마련에 나서면서 부동산 등 자산시장도 팽창했다.
하지만 이제 이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초중고교가 통폐합되고 대학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기업들도 자산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성장시대가 가고 수축시대가 오고 있다.
문제는 수축시대에 세수는 주는데 복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은 급속히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장 큰 것은 기금이 고갈되는 연금 문제다. 지난해 정부 재무제표 결산결과 국가 부채가 1,682조원인데 이중 공무원·군인연금에 대한 충당부채가 939조원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공무원·군인연금처럼 국민연금과 사학연금마저 정부 예산으로 보전하는 사태가 머지않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을 우리는 이제 목전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라도 튼튼하면 이러한 문제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조업은 흔들흔들하고 대신 성장돼야 할 서비스산업은 규제에 묶여 오가지 못하고 있다.
조선·자동차산업을 배경으로 서울보다 더 풍요로웠던 울산·거제 등의 산업도시들은 구조조정과 공장폐쇄로 아우성치고 있다.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에 발이 묶여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고 LG전자는 인건비 부담에 마지막 남은 휴대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자동차산업은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취업자 수가 5.5%나 줄었다. 반도체 메모리 분야도 중국 업체들의 본격 시장진입으로 얼어붙고 있다. 제조업 부진을 우려하는 보고서는 쏟아지고 있다. 제조업 부가가치율이 25.5%(2014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인 30%에 못 미치고 노동생산성 향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통상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넘으면 제조업 성장둔화 현상이 나타난다. 또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고도화시키고 서비스산업 특히 금융·의료·교육·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조업 내에서의 신성장동력은 아직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제조업이 기술력보다는 자본과 노동중심의 물량투입 의존형인데다 과다한 중국 경제 의존도, 중국의 기술경쟁력 급상승,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절벽에서 헤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서비스산업이 규제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유경제의 상징인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한국에서 자리 잡지 못했고 카풀은 아침저녁 2시간씩 하되 택시기사 월급제를 도입하는 걸로 사회적대타협기구가 합의했지만 택시 업계의 거부로 국회 문턱도 못 넘고 있다.
영리병원은 제주도에서 사상 처음 허가가 났지만 외국인 환자 대상으로 제한해 결국 사업성 부족으로 취소됐으며 원격의료는 본격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서비스업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에 상정됐지만 8년째 겉돌고 있다.
한국은 이미 중장기적 측면에서 디플레이션 시대로, 수축사회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게 지금 한국의 형국이다. 제국의 붕괴는 항상 재정 붕괴에서 시작됐다. 방만한 구조를 서둘러 가볍게 바꿔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양극화도 해소 가능하다.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규제를 없애야 한다.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이 닥쳐오는지도 모르고 집안싸움만 하다가는 미래가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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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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