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의 희망 놓지 않았던 그 정신 살아나길", 외손녀인 김현주 교육위원이 20년만에 재출간, 임시정부 이동과정과 실상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20년만에 재출간된 ‘제시의 일기’
일제 치하 어렵게 딸을 키우며 중국 각지를 옮겨 다녔지만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기록한 ‘제시의 일기’가 외손녀인 김현주 프리몬트통합교육구 교육위원의 정리로 20년만에 재출간됐다.
김현주 위원은 “1999년 첫출간된 책이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됐다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세상에 나왔다”면서 “결혼 후 첫아이를 임신한 무렵 할머니가 내민 낡은 일기장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들의 삶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어 옛 문체를 현대어로 바꾸고, 일기 중간중간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와 단상을 추가해 1999년 첫출간했었다”면서 “이후 제시의 일기는 간간이 다큐멘터리 소재로, 역사학자들의 논문 소재로 잊혀진 듯 이어져 오다가 2016년 만화로 재구성한 ‘제시이야기’를 보고 원작을 읽고 싶다는 요청이 모여 이번에 다시 나왔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2000년 미국에 온 이후 한국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미 교사 대상 한국역사문화 세미나 주최자로 일하고, ‘요코이야기’(2차대전 직후 한국인들이 일본 여성들을 상대로 강간과 폭력을 일삼았다고 묘사한 역사왜곡 소설) 퇴출에 나서며 지난해 교육위원선거에 도전한 것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쓴 제시의 일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1941년 새해를 맞아 양우조 최선화 선생과 제시가 함께한 가족사진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상해에서 딸 ‘제시’를 낳고 8년간 썼던 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1938년 7월부터 1946년 4월 28일까지 부부가 번갈아 쓴 일기에는 제시의 성장과정과 가족사뿐 아니라 조국을 떠나 생활하는 있는 것에 대한 아픔과 해방에 대한 염원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이 일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상해,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중경으로 이동한 과정과 당시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김 위원은 “1897년생 할아버지(양우조 선생)와 1911년생인 할머니(최선화 선생)는 14살 나이차로 결혼하셨다”면서 “할아버지는 19살에 중국 상해로 망명해 미국 유학을 가서 방직공학을 공부했다. 이후 다시 상해 임시정부로 간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위해 서울에 다니러 왔다가 미국 유학을 꿈꾸는 할머니를 만나게 됐다. 중국으로 돌아간 할아버지와 이화여전 모교에서 교편을 잡던 할머니 사이에 수차례 편지가 오갔고, 1936년 할머니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상해로 건너가 간호전문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937년 중국 진장의 임시정부 청사에서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당시 사진. 맨왼쪽이 최선화 선생
김 위원은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제시의 일기를 통해 힘든 시간을 용감하게 견뎌내신 분이란 걸 알게 됐다”면서 “미국 유학시절 알래스카 탄광에서 일하다가 찢겨 오른쪽 손가락이 삐뚤어지는 등 고난을 겪으면서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삶의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이어 “할머니는 하루도 일기예보 확인을 빠뜨리신 적이 없었다”면서 “이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의 공습으로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안고 숲 속으로, 동굴 안으로, 무덤 옆으로 중국에서 피신을 다녔던 젊은날의 경험에서 생긴 습관이란 걸 나중에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의 시대적 요구가 독립운동이었다면 지금은 미주류사회에서 한인커뮤니티 존재감을 높이는 일과 다음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이라면서 “다음세대를 위해 힘을 합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나간 임시정부라는 공동체처럼 우리도 그 힘과 정신으로 한인커뮤니티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함께 힘을 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우조 선생(1897~1964)은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과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임시정부 생계부 차장, 한국광복군 정훈처장으로 항일활동을 했다. 선생은 1963년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최선화 선생(1911~2003)은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고 나중에는 한국애국부인회의의 총무부장에 선출됐다. 선생은 1991년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1999년 제시의 일기가 첫출간된 해 찍은 사진. 최선화 선생(가운데)과 그의 딸 제시(오른쪽), 외손녀 김현주 교육위원
1999년 제시의 일기의 첫번째 출간을 지켜본 최선화 선생은 2003년 별세했고, 미대사관 미문화원에 근무했고 서울국제부인회 활동을 한 딸 제시(김현주 위원의 어머니)도 2010년 지병으로 엄마 곁으로 갔다.
또 양우조 선생이 유물가방에 보관했던 임시정부 기록들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현재 제시의 일기 원본은 양우조, 최선화 선생의 둘째딸인 양제니씨가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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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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