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거리는 신발 소리가 고요한 실내공기를 가르며 울린다. 신발을 벗어 한 손에 들고 맨발로 내딛는다. 그렇게 마음은 두 세번도 더 신발을 벗어 들고 뇌리에선 그 모습을 기대하건만 몸은 여전히 뇌리의 속삭임을 외면한 채 움직이고 있다. 마치 고장난 로봇이 더 이상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무한 반복을 하듯. 그러자 더욱 더 강하게 반복적인 명령어가 전달되었다. ‘Stop!’ 애써 외면하며 공간의 소음에 묻혀지지를 바래보지만 마음 속에서 울리는 소리는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내 안의 소리가 내 소매를 이끌며 이제 그만 생각의 고리를 끊고 행동하기를 채근한다.
몇 해 전 봄날, 사이프러스 나무와 로댕의 조각 작품들이 멋지게 어우러진 스탠포드 캔터 아트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B.Gerald Cantor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모아온 작품과 자금을 지원하여 1894년 개관하였고, 이후 지진으로 인해 크게 손상을 입고 문을 닫았다가 1999년 재개관한 스텐포드 대학내 뮤지엄이다. 그날은 근처에 일이 있어 들렀다가 미처 편한 신발로 바꿔신지 못하고 박물관을 찾았던터라,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를 줄이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곤 이내 까치발이 되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지고, 시선은 하나의 작품에 오래 머무른다. 조금 더 천천히, 작품을 살필 수 있고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음이다. 그러던 중 하나의 작품 앞에 붙들린 나를 보았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시간 이동을 한 듯, 나는 1865년 어느 여름날의 작품 속에 있었다. 그곳엔 한 어린 소년이 가파른 절벽 끝에 서 있었고, 한두 발자국만 앞으로 가면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질 듯 아득했다. 맨발에 무릎 아래까지 접혀 올려진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의 뒤에는 멀찌감치 한발을 내밀며 위험에 대한 인식을 깨우려는 듯 다가선 한 소녀가 있었다. 손을 길게 내민 소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조금만 힘을 가하거나 잘못 건드려도 소년은 놀라 발을 내딛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린 소녀의 손끝의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간절하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에 활동한 미국의 화가인 세이무어 조셉 가이의 1865년 작품인 ‘Unconscious of Danger’이다. 주로 아이들을 모델로한 작품을 남겼던 화가 세이무어는 1873년에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부유했던 벤더빌트가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작품을 의뢰했던 윌리엄 헨리 벤더빌트는 현재 CNN의 기자이자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고조부로 당시엔 벤더빌트가가 아직 세계적인 부호가 되기 전이었다. 앤더슨 쿠퍼와 당시 91였던 그의 어머니인 글로리아 벤더빌트가 오랜세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레인보우 컴스 앤 고’는 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로,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세이무어는 화가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작품은 화가의 명성과는 별개로 그만의 생명력을 갖는다. 그림 속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통해, 위험 불감증인 세상의 모습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고, 때론 앞 만을 바라보며 무심히 달려가는 삶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묻는다. 누군가 소매를 붙들고 명확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아무런 자각없이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 또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하는 안일함 속에서도. 스스로 그 벽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벽을 부수고 나오지 못하는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심리학자의 손길에서도. 원칙을 저버리고 무분별하게 건물과 다리를 짓고, 배를 개조해 위험을 부르는 사회적 불감증 속에서도 작품 속 소녀의 간절함을 본다.
얼마전 다시 캔터 아트센터를 찾았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전시되는 작품들이 바뀌었지만,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내게 말을 건넨다. 누군가가 나를 일깨우 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 소녀와 같은 손길이 되어 주었는가를. 휴일 아침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뮤지엄을 방문했다. 높다른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어린 아이들이 두 손을 꼭 잡고 오르고 있었다. 작은 두 손을 붙들고 한발 한발 오르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작품 속 소녀의 간절함을 본다. 삶이란 계단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탱해주며 넘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되어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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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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