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일 심사숙고 필요 하지만, 끝없이 고민만 하다간 기회 놓쳐
▶ 리더, 조직의 나쁜소식 먼저 알아야, 민첩하게 상황에 대처 할 수 있어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옛날에 당나귀가 한 마리 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상태였다. 마침 물 한 동이와 건초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둘 다 자신에게서 같은 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배고픔도 목마름도 둘 다 똑같이 자신을 괴롭힌다.
이 당나귀는 어떻게 했을까. 당나귀는 어느 것을 먼저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을 먼저 먹을까, 건초를 먼저 먹을까. 끝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고 만다.
양쪽 다 자신이 절실하게 원하던 것이었는 데 왜 그랬을까. 정도가 같았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세 프랑스 철학자 장 뷔리당의 당나귀 이야기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다. 도대체 이런 당나귀가 현실에 존재하기나 할까.
그런 당나귀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의사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많다. 바로 필자가 그런 케이스다. 일을 할 때 힘든 일부터 할 것인가 쉬운 일부터 할 것인가가 늘 고민이다. 힘든 일부터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항상 쉬운 것만 하다가 어려운 것은 미루고 또 미룬다. 맛있는 것을 먹을 것인가 몸에 좋은 것을 먹을 것인가. 단것을 먹으면 당뇨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슬그머니 쿠키에 손이 간다.
필자의 손자가 이번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지난해와 달리 벌써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 갔다 오기만 하면 학원 갈 준비에 또 바쁘다. 그뿐이 아니다. 내일 학교에 제출할 과제물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싶다. 하루는 손자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놀고 공부할래, 공부하고 놀래?”
그랬더니 그건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눈치다. 당연히 대답은 일단 놀고 보자는 식이다.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그러나 신나게 놀다 보면 공부는 아무래도 정신 집중도 덜 되고 몸도 피곤한 상태에서 하게 된다. 그래서 아예 이제는 선택지를 주지 않을 참이다. 공부를 무조건 먼저 하고 그것도 잘하면 놀게 해준다는 식으로 바꿀 예정이다.
사실 필자도 놀고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이런 걸 자기 스스로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럴 때는 습관이 들 때까지 외부의 강제도 필요한 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프로그래밍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공무원들과의 접촉이 많은 비즈니스맨에게 들은 이야기다. 관공서에 가 민원을 제기하면 들어줄 수 없는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목표에 없는 일입니다.” 그 민원을 들어줄 인센티브가 없다는 말이다.
둘째, “예산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돈이 없다는 말이다.
셋째, “그렇게 하면 감사 받습니다.”
처벌받을 수 있는 리스크를 수용하기 싫다는 말이다. 영혼이 제거된 상태에서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무원만을 탓하기에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결국 자유의지가 박탈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공무원은 뷔리당의 당나귀가 되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걸핏하면 “굿뉴스(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냐 배드뉴스(나쁜 소식)부터 듣고 싶냐”는 말을 한다. 선점효과를 중시하는 사람은 굿뉴스부터 듣고 싶어 한다. 심지어 배드뉴스는 아예 말하지 말아달라고도 한다. 상황 대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배드뉴스부터 듣고 싶어 한다. 리더는 당연히 배드뉴스를 더 세심히 들어야 한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우리는 굿뉴스에만 관심이 있다. 리더는 조직의 나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민첩하게 상황 대처를 할 것 아니겠는가.
급한 일을 먼저 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는가. 당연히 급하고 중요한 일은 우선순위 1번이다. 그렇다고 급한 일만 처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시간관리의 핵심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독서와 운동이다. 책 한 줄 읽지 않는다고 무슨 큰일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는다. 걷기를 게을리한다고 당장 응급실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1년 내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결국 평생 책과 담쌓고 산다. 당장 가까운 서점에 한번 들러서 책을 사보라. 그리고 미세먼지도 많은데 차를 놓아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라.
어떤 것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요한 일일수록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것이다. 끝없이 고민하다가는 뷔리당의 당나귀가 될 뿐이다. 때 늦은 결정보다 더 나쁜 비즈니스 결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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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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