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네이도 피해 앨라배마 방문길 트럼프 행동 논란
▶ 상당수 교계 지도자들 “신성모독·불쾌” 쓴소리
토네이도 피해지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성경책 겉면에 서명한 일로 뭇매를 맞고 있다. (AP)
“남부지역 교회에선 흔한일, 문제삼을일 아냐” 반응도
레이건·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도 성경에 서명한적 있어
가수나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진이나 CD에 서명하고 작가가 자신의 신작에 서명해 팬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흔히 보는 광경이다. 하지만 저자도 아니면서 성스러운 성경책 겉면에 큼지막하게 서명하는 사람을 본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미국 교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성경 겉장에 서명한 일을 두고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시끌시끌하다. 관련 논란의 배경과 골자를 살펴본다.
■ 위로 방문길 성경 서명
이번 논란의 불씨는 이달 초 미 남부를 강타한 토네이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찾아가 주민들을 위로하던 과정에서 번져 나왔다. 어린이 4명과 80대 노부부를 포함해 23명이 사망한 앨라배마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보르가드의 한 남침례교회에서 피해자 가족과 자원봉사자 등 주민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때 주변에 있던 한 12세 남학생이 먼저 자신의 성경책을 내밀며 서명을 요청했고 곧바로 10세 여학생의 요청이 뒤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절하지 않고 성경책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서명했고 동행한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또 다른 성경책 등에 서명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성경책 안쪽도 아닌 겉면에 저자도 아닌 사람이 쇼를 하듯이 휘갈기듯 서명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행동이며 성경을 모독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 부적절한 신성모독 주장
상당수 교계 지도자들은 AP 통신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노스다코타의 제일성도그리스도연합교회의 캐시데이-멜로니 목사는 ‘큰 글씨로 성경 겉장에 서명하는 행동은 대단한 자만심이 담긴 태도였다. 신성모독과 다름없이 느껴졌다’며 ‘특히 정치인들이 성경에 서명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흐릴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를 옹호하는 태도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드아일랜드 교회협의회의 도니 앤더슨 목사도 ‘휘갈기듯 성경책 위에 서명한 대통령의 행동에 심히 불쾌감을 느꼈다’며 ‘자신을 지지해 온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의식해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미리 계산된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플로리다 인터페이스 중앙위원회의 제임스 코핀 사무국장은 ‘차라리 대통령이 직접 성경책을 가져와서 나눠준 것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을 텐데 별 것 아닐 수 있는 일에 너무 많은 이목이 쏠리는 결과를 낳게 했다’며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 문제될 것 없는 남부 전통 주장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빌 레오나드 신학교수는 ‘신학생들이 이번 일로 SNS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성경에 서명하는 것은 특히 남부 지역의 교회에서는 흔한 일이자 오랜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남부의 정서를 이해한다면 문제 삼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만약 대통령이 정치 행사에서 성경책에 서명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교회에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던 만큼 방문 목적에 맞는 적절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오히려 서명 요청을 거절했다면 불친절한 이미지를 심어줘서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남침례교 신학대학원의 허샤엘 요크 학장도 ‘설교나 초청 강연 후 성경책에 서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요청에 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 거절하지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요청자가 원하는 서명이 담긴 성경책을 의미 있게 생각하고 다룬다면 못해줄 이유가 없다는 것.
댈러스제일침례교회의 로버트 제프리스 목사도 ‘성경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은 늘 있는 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동도 상당히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 전직 대통령도 서명했다
역사적으로 전직 대통령은 물론 유명인들 가운데 성경에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해준 사례는 꽤 있다. 다만 성경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적은 트럼프와 달리 다른 이들은 성경 안쪽에 성서적인 메시지를 적어 선물로 건넸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실제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6년 간단한 메시지를 안쪽에 적고 서명한 성경책을 이란 관계자에게 전달한 바 있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도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던 성경에 서명한 후 1939년 검찰총장 선서식에 사용토록 했다.
스미소니안 박물관의 피터 맨소 종교 큐레이터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경에 서명한 적이 있다며 대통령은 성경은 물론이고 특이한 물건에 서명 요청을 받을 때가 많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 기간에도 성경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적이 있으며 이 성경은 훗날 e-베이에서 판매가 3,500달러의 매물로 올라오기도 했다.
■ 미국인 대다수 ‘부적절’ 반응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트’가 18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의 64%는 트럼프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답했다. 또한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성경에 서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답변도 각각 62%와 71%로 꽤 높았다.
기독교인 응답자 중에는 65%가 부적절하다고 답해 종교와 무관한 전체 응답자가 내놓은 부정적인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를 아낌없이 지지해 온 백인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부적절했다는 의견은 45%, 문제없다는 의견은 35%였다. 설문조사는 2,201명을 대상으로 3월12~15일 실시한 것이며 표본오차범위는 ±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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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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