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성의 날이야. 알았어?” 3월 8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남편에게 물었다. 세계여성의 날이 1975년 유엔에서 채택된 만큼 유엔 산하기관인 내 직장에선 얼마 전부터 여성의 날 행사를 준비해왔다. 워싱턴 DC에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세계은행과 IMF의 두 총재가 여성인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 총재의 특별간담회도 있었다. IMF 총재는 프랑스 여성인 크리스틴 라가르드이고 현재 세계은행 총재는 불가리아 여성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이다. 김용 총재가 지난 1월 갑작스럽게 사임한 후 2월부터 신임 총재가 선출돼 시작하기까지 임시이긴 해도 두 기관이 동시에 여성 총재를 둔 것은 역사상 처음이자 앞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여성의 날’을 그렇다고 유엔이 만든 것은 아니다. 110년 전인 1909년 2월 28일 뉴욕에서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처음 여성의 날로 선포되었다. 그 후 유럽 각국으로 퍼진 후 구소련에서 1917년 3월8일에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해 여성들의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을 기념해 3월 8일이 국경일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나 사회주의 운동과 맞물려 주로 공산 국가들에 의해 기념되었고 공산주의 붕괴 후, 세계 여성의 날은 공산정권의 상징 중 하나로 치부되어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며 국제적으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남성의 날은 없는데 왜 여성의 날만 기념하냐?’ 볼멘 한국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말 한국에 방문했을 때, 정신과 의사가 되어 모교 대학 근처에서 심리상담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때 그녀가 한국 젊은이들의 문제 중 심각한 성 대결 문제를 언급했었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젊은이들은 결혼한 여자, 아이를 가진 여자 등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남자 청년들은 여자들에게만 특권이 준다고 여자를 적으로 여기는 상황. 그래서 종종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에게 폭력을 휘둘러 그 적대감이 점점 심화되어 간다고 우려했다.
전통적 남성 중심사회이자 집단적 성향이 강한 한국은 여성들의 정당한 주장에 대해서도 “여자애들이 시끄럽게 군다”며 일축해 버린다. 남성과 한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에 익숙한 세대는 교육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무조건 희생당하던 과거의 여성에 비해 현재의 젊은 여성의 삶이 충분히 좋아졌다고 한다. 3월 8일 자 뉴욕타임즈엔 “왜 세계 여성의 날이 아직도 필요한가”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글 중에 한국의 여대생들의 “마녀행진” 사진이 크게 나왔다. 여대생들이 “마녀는 죽지 않는다”는 구호표를 들고 검은 망토를 입고 행진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 뉴욕타임스 기사는 여러 수치로 왜 여전히 전 세계에 여성의 날이 필요한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예를 들면 성별 정치력 차별 (유엔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국회의 23.7%만이 여성), 글라스실링 (미국 내 경영진의 4.8%미만, 노벨상 수상자의 5%만이 여성), 임금 격차(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평균 23% 적게 받음), 교육차별, 성폭력 및 여성에 대한 폭력 등등. 한국은 이러한 평균 수치에도 못 미치니 여성에게 평등한 세상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와 대우가 주어지는 세상을 요구하는 미래지향적 목소리가 여성의 음성이라고 마녀라고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질문에 남편은 “뭐? 여성의 날? 그런 게 있었어?”라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 사무실에선 오후에 케익과 과일 등 스낵을 나누며 여성의 날을 기념했고, 어떤 팀에선 팀런치를 나가 남자직원들이 여자직원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고. 또 두 국제기구 총재가 여자인 오늘이 역사상 처음 있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는데, 항상 남자들만 모인 정상회담은 익숙한데 여자들만 모인 정상회담도 기이할 것이 전혀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할 거라고. 두 딸을 키우는 우리로선 그런 날이 빨리 오도록, 여성의 날이 왜 현재 진행형인지 더 열심히 알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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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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