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용의 민주화운동 비망록8
▶ 최성일 박사와 DJ 그리고 장도영 전 총장 방북 사건
최성일 박사의 생전 모습(왼쪽)과 최 박사의 어머니인 영화배우 김신재 여사.
정기용 자유광장 대표의 회고록을 연재한다. 그는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한 6.3사태를 계기로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길고 긴 저항의 산맥을 종주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갈구한 시대에서 그는 화려한 주역은 아니었지만 번민하는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충실한 투사였다. 따라서 그의 회고는 온전한 개인사라기보다 주관적인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며 미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덧붙여 그가 산수(傘壽)의 세월 동안 주유(周遊)해온 애주와 명사들과의 교유의 흥미로운 기록이다.
-최 박사 어머니는 영화배우 김신재
‘진리란 기억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나의 진리의 길 위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최성일 박사다. 그는 영화감독 최인규와 영화배우 김신재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해방 이후 최초의 한국 영화인 ‘자유만세’를 연출했으며 6.25때 납북됐다. 나운규 감독의 동료였으며 신상옥 감독이 그의 조감독으로 있었다. 어머니 김신재는 청순한 용모로 인기를 끈 여우(女優)였다. 노령에는 윤흥길 원작의 ‘장마’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도 출연했다.
최 박사는 서울고와 서울 법대를 나와 동화통신 기자를 하다 66년 미국으로 유학 왔다. 뉴욕 주의 윌리엄 & 허버트 대 교수이던 그는 블루진에 Y셔츠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교수를 하면서 ‘한민신보’ 영문판 편집인을 맡아 맹활약했다. 영문판은 미 상하원의원 전원과 백악관, 그리고 정부 부처 요로에 매번 배포돼 한국의 실정을 알렸다.
그의 영어 실력에는 미국인들도 혀를 내둘렀다. 하버드대 도서관장 출신의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가 “최 박사는 우리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도 친분이 있었고 프레이저 위원회와도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최 박사의 동교동 방문
최성일 박사는 대학 교수 직을 그만 뒀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DJ를 도왔다. 그는 김대중의 영어 연설과 미 의회 및 주류사회를 연결하는 채널이었다. DJ의 저서 ‘대중경제론’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케 한 이도 그였다. 김대중이 2차 망명을 끝내고 워싱턴에서 1985년 2월 귀국할 때 밥 와이츠 전 파라과이 주미대사, 린지 매티슨 국제정책개발원장 등 미국인 그룹과 동행했다.
하지만 생활고가 그를 괴롭혔다. 최 박사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다. 동교동으로 찾아가 DJ를 만났다. 동교동은 이미 참모들에 의해 인의 장막이 쳐져 있었다. 겨우 접견이 허락된 것이다. 그는 고충을 토로했다.
“민주화운동으로 종신교수 직도 포기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최 박사에게 DJ는 “이 사람아. 야당 하는 사람이 돈이 어디 있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서울에 있던 내게 최 박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시청 앞 플라자 호텔 13층의 덕수홀에서 DJ의 처남 이성호 씨와 같이 만났다.
“이젠 김대중 선생 만나기도 쉽지 않네요. 만나주지도 않고, 만나기도 어렵고….” 최 박사는 실의에 젖은 표정이었다.
그날 우리 셋은 통음을 했다.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 최 박사는 워싱턴으로 돌아간 얼마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DJ와 YS의 추도사
최 박사가 타계한 몇 달 뒤 추도식이 종로에 있는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그날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앞줄에는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앉았다. 한민신보 발행인 자격이었다. 에드워드 베이커 등 인권운동 관련 외국인들도 여럿 참여했다. 젊은 자식을 떠나보낸 최 박사의 어머니 김신재 여사는 영정 앞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추도사 시간이었다.
“위대한 지도자가 갔습니다. 세상에 이런 아까운 분이 가다니….”
김대중은 하늘이 무너진 듯 통탄했다. 불현듯 바로 얼마 전 재정 지원을 딱 잘라 거절당한 사실이 떠올라 표현할 수 없는 거부감이 솟아올랐다. 그냥 차분하게 애도만 표하지 말이다.
김영삼의 순서였다. 두 사람은 민주화 동지를 넘어선 정치 라이벌이었다. 무대에 올라간 그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추도했다.
“이 분이 낼 지지한 것도 아니고… 초상화를 보니, 넥타이 맨 걸 영정에서 처음 봅니다.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하셨는데 참 안됐습니다.”
YS의 과장 없는 순수한 애도를 들으며 DJ와 대조됐다. 다음 대통령은 YS가 될 것이란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이후락, 대형빌딩 비밀 매입
한민신보를 발행하며 잊지 못할 사건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이후락의 LA 빌딩 비밀 매입과 이도선 의원 파동, 장도영 전 육참총장의 방북사건 보도는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락은 박정희 정권에서 비서실장, 정보부장을 지내면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자였다. DJ 납치사건으로 중정에서 물러난 그가 비밀리에 LA의 빌딩을 매입한 사실이 포착됐다. 당시 돈으로 엄청난 고층인 CNN 빌딩이었다. 부정축재 재산을 빼돌려 미국에서 대형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한민신보의 보도로 이후락은 곤경에 처했다.
7.4 공동성명 1주년을 맞아 한민신보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김대중, 박정희, 김일성의 통일방안을 사진과 함께 실은 것이다. 파격적이고 대담한 기사였지만 사진 때문에 한국 국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국회가 열리자 이도선이란 공화당 의원이 한민신보를 꺼내들고 발언했다. “김대중은 반국가 행동을 했다. 그는 빨갱이다.” 박정희 옆에 김일성과 김대중 사진을 나란히 실은 게 그들의 눈에 크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폴 장과 장도영 전 총장의 방북
폴 장 사건 보도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워싱턴에 거주하던 폴 장은 한국 이름이 장경환으로 당시 42세였다. 서울고와 연세대를 나왔다는 그는 무역업에 종사한다고 했는데 서울을 자주 드나들었다. 정일권 총리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한인 중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74년 6, 7월경 폴 장은 웨스턴 미시건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남창우, 장도영 교수를 데리고 평양을 다녀왔다고 한다. 최원철이란 워싱턴 한인과 함께였다. 최원철은 그해 9월 폴 장과 둘이서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장도영 교수가 누구인가. 육군 참모총장으로 있다 5.16 쿠데타 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낸 거물이었다. 반혁명혐의로 체포된 후 1963년 도미한 그는 이 대학 교수로 있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도영 방북설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물론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평북 출신이인 장도영은 방북설 이후 한 번도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폴 장은 CIA 요원을 사칭하고 다니다 경찰에 체포됐다. 장은 관명 사칭(CIA 요원)혐의로 기소됐다 나중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미시건의 지역신문인 웨스턴 헤럴드 지가 이를 보도한 것을 입수해 한민신보에도 실었다.
그는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자가용차에 사이렌을 달고 다녔고 통금시간에도 무상 통행하는 특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워싱턴한인골프협회 총무를 맡는 동안에는 정일권 국회의장배 대회를 열기도 했다.
-대사관 장교들의 귀국거부 사태
앞서도 밝혔지만 군 출신 인사들의 이탈은 전직 장성들뿐만 아니었다. 현역 장교들도 박 정권에 등을 돌렸다.
1976년,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장교 3명의 집단 귀국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문한식 대령과 최헌식 해병 중령, 김일옥 소령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내정치에 대한 항거와 보직에 대한 불만이 겹치며 연달아 사표를 내고 귀국을 거부했다.
유신정권을 향한 내부의 파열음은 도처에서 울렸다. 이미 공보관들이 연쇄 망명을 선언한 데 이어 강경구 장학관도 집안 사정을 들어 귀국하지 않았다.
유신정권에 대한 안팎의 저항이 거세지자 북한은 딴 마음을 품었다. 해외교포들에 대한 공작 강화에 나선 것이다.
<다음 호로 본 비망록은 막을 내린다>
<
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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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아랫사람들 정신병원 좀 보내주세요
개.대.중 이랑 잘 놀아라 그쪽에서.
주접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