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3일 베이사이드 성전 첫 주일예배 및 입당예배후 김승희목사(첫째줄 왼쪽세번째)와 교회 관계자들.
뉴욕초대문화학교 개강예배후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81년 개척후 38년간 한 교회서 시무
위기때마다 인내·기도로 이겨내
도미니카에 선교센터 지어 16년째 운영
미퀸즈교협으로부터 올해의 목회자상 수상
28세 청춘에 뉴욕초대교회를 개척하여 38년째 시무 중인 김승희 목사. 그의 발걸음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적을 창출, 더욱 발전하고 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사목 현장 이야기를 들어본다.
■신학공부·교회개척 기적의 연속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님이 다니던 신남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다. LA 임동선 목사의 초청강연에 은혜 받으신 어머님이 11남매의 막내인 본인을 목사로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셨다.”
그래서 모태신앙을 지닌 김승희 소년은 어머니 백금란 권사의 서원대로 어려서 막연하게 목사가 되려했다. 그런데 아버님 김재중 장로와 다른 장로 1명이 영동교회(김시원 목사)를 어렵게 개척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목회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목사가 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용산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을 때 김승희 청년은 미국 갈 자격을 얻었다. 첫 번째 기적이었다. 그래서 1977년 뉴욕으로 왔다.
“ 큰 포부를 갖고 헌터 칼리지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던 중 육체적 질병이란 고난이 닥쳤다.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병만 고쳐주면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사흘간 죽었다 깨어나보니 병이 나아있었다. ”
김승희 청년에게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헌터 칼리지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신학공부를 했다. 1978~1980 헌터칼리지 심리학, 1981~1983 KPCA미주장로회신학대학을 다녔고 전도사 자격으로 81년 10월 우드사이드 73가에 교회를 개척했다. 고작 28세였다. 장소는 형님 집 지하실이었고 창립예배에 형님부부와 조카, 장인장모와 아내, 처제 등 가족 11명이 시작이었다.
그보다 1년 전인 80년, 한국에 나가 10월11일 선을 보고 12일만에 결혼한 아내 김경신씨는 81년 5월에 뉴욕으로 왔다. 9월에는 장인장모가 장녀를 따라 차녀와 함께 왔다. 이렇게 패밀리 예배로 뉴욕초대교회는 시작된 것이다.
당시 뉴욕인근에 퀸즈장로교회, 순복음교회, 퀸즈한인교회 등 대형교회를 비롯 120여개의 교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뉴욕초대교회는 설립 8년만에 교인 수백명, 건축헌금 100만달러가 모일 정도로 급격 성장했다. 1983년 11월 브루클린 그린포인트로 교회가 이전했고 1985년 4월8일 미국한인장로회 제21차 정기노회에서 김승희 전도사는 목사 안수식을 가졌다. 1987년 우드사이드 58가 시절에는 1년에 5만달러 규모 장학금을 시상하는 등 한인사회 봉사에도 앞장섰다.
초기이민자인 맞벌이 부부를 위해 뉴욕최초로 방과후 학교를 설립했고 토요일에는 초대한국문화학교를 운영하면 2세 교육에 힘써왔다.
■만난지 12일만에 결혼
뉴욕초대문화학교 개강예배후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래 찬양목회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 후 미국으로 먼저 와서 헌터에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피아노를 비롯 악기 공부를 하게 했다. 12일만에 결혼을 결심한 것도, 28세에 교회를 개척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는다. ”
김승희 목사의 결단력과 추진력, 평안한 위로를 주는 설교가 교회의 성장 배경인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사모의 마음이다. 5대째 모태신앙으로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강단에 서고 싶었던 김경신씨는 미국에서 온 청년 김승희를 만나 가치관, 신앙관 등 모든 것이 맞으면서 첫 눈에 “이분과 평생을 같이 가야겠다” 결심했다 한다.
그래서 미국 온지 1년 만에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식사, 성전 청소, 교인 픽업을 비롯 반주, 지휘 등 1인 4~5인 역할로 내조하면서 늘 ‘나는 헬퍼다’는 마음으로 도왔다.
뉴욕초대교회는 부쩍 성장해 나갔지만 1991년부터 97년까지 7년간 대환란을 치렀다. 뉴욕에서 가장 부흥하던 교회가 노던블러바드 126가 셰이 스테디엄 옆 건물로 이전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93년 한 장로가 교인들을 데리고 독립해 나가면서 교회는 빚을 지고 건물 2층 작은 공간으로 옮기는 등 교세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김목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1997년 72가 잭슨하잇에 경매로 나온 건물을 기적적으로 낙찰 받아 자체 건물을 갖게 되면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이때 한국에서 IMF가 터졌다. 뉴욕한인들도 그 여파로 살기가 힘들어지고 ‘김승희 목사 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 목사는 매일 매시간,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위기에도 살려주시면 선교센터를 지어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쉬지않는 기도와 선교로 인해 교인이 수백명을 넘어서면서 2002년 건축 후유증에서 벗어나자 교회의 새로운 부흥기가 돌아왔다.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 태국, 필리핀 등지로 선교센터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도미니카에 선교센터 건축
뉴욕초대교회 도미니카 앨프 푸에르토 소재 선교센터 모습과 현지인들의 합동결혼식, 교회에서 웨딩드레스와 예복을 마련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뉴욕에서 3시간 거리인 도미니카다. 마침 이곳에는 뉴욕초대교회 청년부 출신 최상민 집사가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부모님이 식당을 하는 도미니카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선교센터 초창기부터 거부가 된 지금도 교회를 도와주고 있다. 은행에서 180만 달러를 얻었고 2003년 도미니카 공화국 엘프 푸에르토(el-puerto)에 땅 1만평을 구입, 2005년 2층 발코니가 있는 아름다운 선교센터를 완공했다.
선교센터는 6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성전과 학교 교실 및 기숙사가 구비되어 있어서 원주민의 합동결혼식과 입학식, 졸업식이 열린다. 선교사 2인이 파송되어 선교센터 2개 부속 건물에서 에덴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김목사는 수시로 이곳에 가며 교인들도 여름 단기선교를 이곳으로 가 의료, 건축, 성경학교, 노방전도사역을 실시한다.
뉴욕이민교회 역사상 대형교회들이 여러 곳에 선교센터를 세웠으나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재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은 뉴욕초대교회 선교센터가 유일하다. 16년이 된 유치원에서 한해 40여명, 500명이상의 학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잭슨하잇에서 10배의 성장을 한 뉴욕초대교회는 17년후인 2014년, 현재의 자리인 베이사이드 210가로 이전, 그해 8월3일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1,000평 규모에 교회 본당과 소성전, 지하 친교실, 아담한 정원이 딸려있다.
지난 1월25일 김승희 목사는 퀸즈미국교회협의회(Queens Federation of Churches)가 주는 ‘올해의 목회공로상’을 받았다. 김 목사의 이번 수상은 한인목사로 처음이다. 김 목사는 2015년 전미소수민족연대협의회(NECO) 엘리스 아일랜드상도 미국내 성직자로서 최초로 받았다. 또한 1983~1985 Vally Forge Christian College, 1989~1991 뉴욕신학대학원(NYTS), 2008년 한국기독대학교 선교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1~2012 미 장로교 동부한인노회 노회장. 2013~2014년 뉴욕교협 회장을 역임했다. 김승희 목사가 살아온 좌우명은 미주장로회신학대에서 한 강연에서 엿볼 수 있다.
“어려서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시느라고 실타래 풀기를 자주 시켰다. 엉킨 실을 풀면 먹을 것을 주시곤 했는데 친구와 나가 놀고 싶고 신경질이 나더라도 실을 잘 풀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목회를 하면서 당신에게 수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목회의 첫 번째는 인내, 두 번째도 인내, 세 번째도 인내다, 끝까지 참아라, 절대로 분노하지 말라.”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는 김승희 목사, 그의 종교철학은 ‘인내’ 인 것같다. 뉴욕초대교회의 올해의 표어는 ‘말씀으로 살아나게 하소서’(시편 119:25)이며 250명의 교인들이 김승희 목사를 중심으로 2세 교육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담당하고자 한다.
현재 뉴욕한인교계에서 유일하게, 개척한 교회에서 38년간 담임목사로 시무 중인 김승희 목사, 미국 이민, 결혼, 교회의 위기 등등을 헤쳐온 ‘미라클 맨(Miracle Man)’ 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적을 창출해 낼 것으로 보인다. 김승희 목사는 김경신 사모와의 슬하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나와 한국 명성교회 EM목회자로 재직 중인 아들과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두었다.
■ 미국 장로교 ‘뉴욕초대교회’
주소: 210-10 Horace Harding Expy Oakland Gardens, NY 11364)
전화: 347-502-2571
E-mail: nycdchurch@yahoo.com, 웹사이트: www.nycd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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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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