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스 데이를 둘러싼 종교적 화두는 많지만‘ 사랑하며 살자’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AP]
힌두·이슬람교, 젊은이들 이날 즐기는 것 반기지 않아
밀레니엄 세대 자유스런 성 인식 신앙과 상관없어
혼전순결 강조하던 기독교 성교육 재정립 목소리
최고의 사랑을 꿈꾸는 세상의 모든 연인들을 위한 ‘밸런타인스 데이(2월14일)’가 떠들썩하게 또 지나갔다. 언뜻 종교와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지만 혼전순결, 데이트폭력, 피임약 처방 및 낙태, 동성애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며 의외로 다양한 종교적 논쟁의 중심에 늘 놓여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날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따라서는 과연 이날을 즐기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한다. 밸런타인스 데이가 던진 대표적인 종교적 화두를 살펴본다.
■과연 즐겨도 되나?
밸런타인스 데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많지만 연예결혼을 엄격히 금지하던 고대 로마 시절에 사제 밸런타인이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다가 이교도의 박해를 받고 처형된 날을 기리며 시작됐다는 것이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유래나 의미는 퇴색된 채 이미 상업적으로 둔갑한지 오래됐지만 일부 종교에서는 이날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거나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도의 힌두교는 공공장소에서 손을 잡거나 애정 행위도 금하기 때문에 사랑을 최대한 표현해야 하는 밸런타인스 데이를 꺼린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힌두교도들이 밸런타인스 데이 때마다 반대 시위를 전개하기도 하고 2001년에는 힌두교 문화를 해치는 날이라며 대규모 폭동까지 발생했다.
이슬람교는 ‘사랑 표현은 특별한 날을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금기의 이유로 젊은이들이 밸런타인스 데이를 즐기는 것을 탐탐치 않게 여긴다.
유대교는 이날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종교적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14세기에 전염병으로 수많은 유럽인이 죽어나갈 당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독살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유대인 2,000여명이 불에 타서 억울하게 몰살당했던 역사적 아픔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일부에서도 이교도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밸런타인스 데이의 또 다른 유래를 근거로 기독교인들의 밸런타인스 데이 참여를 반대하기도 한다.
■혼전 순결 강요 그만
보수적 성향의 종교적인 성장 배경을 지녔다면 밸런타인스 데이에 사랑을 이룬 청춘남녀들에게 닥친 가장 큰 고민은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 여부다.
하지만 밀레니엄 세대의 요즘 젊은이들은 혼전순결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이 보수적이지도 않고 종교는 물론 신앙의 깊이와도 상관없어 고리타분한 얘기로 치부될 뿐이다.
실제로 전국복음주의협회(NAE)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8~39세 연령 기독교 미혼 청년의 80%가 혼전 성관계를 이미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혼이라도 피임만 제대로 한다면 혼전 성관계를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일만큼 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뉴욕시립대학에서 연구한 ‘종교와 성행위’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주요 종교 가운데 이슬람교가 혼전 순결에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마저도 60%를 웃도는 수치였다.
전문가들도 예전에는 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죄악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며 성스러운 선물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때라고 지적한다.
중세시대부터 교회가 적극 나서 혼전 순결을 강조하고 부부관계까지 지나치게 간섭하며 성욕을 마음에 품는 것조차 죄로 여기도록 교육해왔지만 정작 성직자들 중에 동성애가 많았던 상황을 볼 때 과연 당시부터 유래한 기독교 성교육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 현실을 감안해 교회가 그간 잘못 가르친 기독교 성교육을 다른 차원,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피임약 처방과 낙태
밸런타인스 데이를 전후로 초콜릿에 버금가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광고로 피임약과 피임기구를 꼽는다. 밸런타인스 데이가 상업화되면서 오히려 10대 청소년의 임신을 부추긴다는 비난이 많아졌고 하룻밤 사랑으로 끝나버린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에서 피임약과 피임기구는 해방구가 됐다.
2000년 밸런타인스 데이에는 76개 단체 연합이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피임약 판매를 승인해줄 것을 연방식품의약국에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산부인과학회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종교적인 시각에서 피임하는 것 자체를 낙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확대된 뉴욕주 낙태 허용법<본보 1월24일자 A14면 등>을 비롯해 주정부별로 오히려 낙태 규정 확대 허용이 증가 추세로 치닫고 있어 교계와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타
1998년 뉴저지 힐스보로의 공립학교에서는 밸런타인스 데이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란 이유로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1995년에는 위스콘신의 한 공립학교 여학생이 밸런타인스 데이 카드를 돌리면서 ‘예수 사랑’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학교의 규제를 받자 전국적으로 종교적 자유와 민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너도나도 즐기는 밸런타인스 데이에 파트너를 구하려고 데이팅앱 등을 통한 비윤리적 만남이 성행하자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무분별한 성문화에 대해 교계의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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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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