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 정치의 가장 인상적 장면은 흰 눈 내리는 설경 속의 대선 집회였다. 영하 10도의 혹한도 아랑곳없이 운집한 수 천 명 지지자들이 핫 초콜릿으로 몸을 녹이며 환호를 보낸 에이미 클로버샤 미네소타 연방 상원의원의 10일 민주당 대선 출정식이었다.
얼어붙은 미시시피 강변의 한 미니애폴리스 공원, 눈보라 속 출마선언도 쉽게 잊혀 질 이미지는 아니지만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대부분의 한인들을 포함한 상당수 유권자들이 “에이미 누구?”라고 반문할 낮은 지명도에 비해 진보·보수 해설가들의 의외로 높은 평가였다.
다음날 워싱턴포스트의 헨리 올슨은 “트럼프에게 최악의 악몽”이라고,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리언하트는 “트럼프가 두려워해야 할 후보”라고 단언했고 그보다 앞서 유명 보수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현 대통령을 짐 싸서 내보낼 최적의 후보”로 클로버샤를 꼽으며, 그녀를 선출한다면 “피로에 지친 나라가 마침내 긴 숨을 내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58세의 3선 상원의원 클로버샤의 본선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 이들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는 중서부 출신이라는 지리적 ‘자산’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에서 승리했고 미네소타에서도 불과 2포인트 차이로 패했었다. 이렇게 민주당에 등 돌렸던 중서부는 2020년에도 트럼프 재선 여부가 결정될 주요 표밭이다. 그리고, 클로버샤는 ‘대단히 인기 높은 중서부 정치인’이다.
예일대와 시카 고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와 8년의 검사생활을 거친 클로버샤는 2006년 상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미네소타 사상 첫 여성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법대교수 남편과 예일대를 졸업한 정치지망생 딸을 둔 화목한 가정의 주부인 그는 재선 땐 35포인트, 3선 땐 24포인트의 큰 표차로 거듭 압승을 거두며 경합지인 중서부 표밭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둘째는 극단적 진보 이념의 리버럴 기수를 자처하는 대부분 후보들에 비해 그는 온건한 중도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올슨은 트럼프가 승리했던 43개 카운티를 포함한 경합지역을 휩쓴 그의 3선 승리 비결로 “블루칼라 트럼프 민주당원과 화이트칼라 반 트럼프 공화당원” 표밭에 동시에 어필한 그의 합리적 중도성향을 꼽았다.
“셧다운과 셧다운의 연속, 교착상태에 우린 지쳤다”며 출마선언에서도 초당정치를 강조한 클로버샤는 공화당 상원의원들로부터도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는 실용주의자로 꼽힌다. 이민, 기후변화 ,헬스케어, 총기규제 등 주요이슈에서 민주당론과 어긋난 적이 없는 확실한 진보이지만 무소속 유권자들을 겁나게 할 만큼 과격하지는 않다.
유니버설 헬스케어는 공약하지만 정부주도의 ‘메디케어 포 올’은 지지하지 않고, 부유층의 세제혜택 폐지는 역설해도 70% 증세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대학교육 기회 확대를 추진하지만 학비 무료는 그의 어젠다에 포함되지 않았다. 향후 10년 내 화석연료 폐지를 선언한 ‘그린 뉴딜’ 정책도 다투어 적극지지를 선언한 다른 주자들과 달리, 상원 결의안은 지지하지만 구체적 사안에 대한 표결에선 반대할 수 있다고 거리를 두었다.
상원에서도 이민 등 논란 이슈에 앞장 서는 대신 처방약 값 인하, 온라인 프라이버시와 소비자 보호 등에 포커스를 두고 막후에서 조용히 성사시키는 ‘일하는 의원’이었다. 그래서 안전한 시도만 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상원에서 가장 많은 법을 통과시킨 의원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 유권자의 과반수는 자신을 중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2020년 민주당의 절대과제는 트럼프를 이기는 것이다. 최근 몬머스대학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응답자 56%가 “이슈에 대한 의견이 자신과 달라도 트럼프에 강적이 될 만한 후보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 생각이 투표에 반영된다면 민주당 내 말없는 다수가 클로버샤의 잠재적 표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표심은 타협보다는 대결에, 정책보다는 인물에, 실체보다는 웅변과 포장에 쏠리는 게 선거의 현실이다. 게다가 하원을 장악한 후 열정과 에너지 넘치는 선명한 리버럴 보이스가 압도하는 현재의 민주당에선 경선부터가 클로버샤에겐 너무 높은 관문이다.
스타들이 넘쳐나는 민주당 대선필드에서 스타파워 부족한 절제된 기질의 클로버샤는 자신의 표현대로 “정치 조직도, 돈도 없어” 미디어의 지속적 관심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수계와 특별한 유대 없는 백인 후보여서 민주당의 주요표밭인 비백인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지도 미지수다.
그의 자서전 제목 ‘이웃집 상원의원’처럼 소탈하고 매너 좋은 ‘미네소타 나이스’로 통해온 그의 이미지는 출마 선언과 함께 ‘혹독한 보스’라는 익명의 제보들로 타격을 입었으며, 조만간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오하이오 연방 상원의원 셰럿 브라운이 합류하면 클로버샤의 ‘온건파’ ‘중서부 출신’이라는 자산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지명도를 높이려면 6월의 공개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선두권에 올라야 하는데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장애요소 또한 만만치 않다.
이처럼 중위권에 머물고 있는 그가 흰 눈밭의 출정식과 함께 첫 온건파 주자로 의외의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철 이른 민주당 대선 경주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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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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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에 선거지형과 국민의 정치의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힐러리 클린턴의 재탕 가지고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