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각의 가치 지닌 권력·명예·부,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 부딪혀
▶ 전장에 ‘정의로운 패배’란 없듯, 가치관 확립해야 최선의 선택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비행기 한 대가 뉴욕 맨해턴 옆으로 흐르는 허드슨강에 불시착한다.
물 위에 착륙하는데 마치 한 마리 새처럼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사실 이 비행기가 강 위에 불시착하게 된 것은 새가 엔진에 부딪치면서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155명의 승객 전원이 살아나는 기적을 연출한 이 감동의 드라마의 주인공은 노련한 기장이다. 말들이 이동하면서 길을 잃으면 노련한 암말을 선두에 세우듯이 이 노련한 기장은 침착하게 대응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승객 전원을 안심시키면서 대피시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가 청문회에 선다. 굳이 강이 아니라 인근 공항 활주로로 가서 착륙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기초한 비판에 직면한다.
논란의 핵심은 인간의 판단이 컴퓨터와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공항으로 돌아가 착륙하려는 판단을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려 실기한다면. 그 결과 자칫 추락이라도 한다면 막대한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이 사건에는 기술과 판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도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올바른 인간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은 가르치면 된다. 학교에서 모든 걸 다 배워 사회에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다. 옳은 말이다.
그러면 올바른 가치관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 흔히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들을 한다. 가치관이 비뚤어진 인간에게는 두 번의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만드는 것은 교육과 인센티브로 가능하다.
우선 가치관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매길 때 우리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적들이 강 건너편에 도착한다. 그러고는 밥을 짓기 시작한다.
“폐하, 지금이 바로 적들을 공격할 최상의 적기이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적들이 가장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옵니다.”
방금 척후병에게 보고를 받은 장군이 하는 말이다. 그랬더니 “어찌 적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쳐들어간다는 말이오. 그것은 결코 군자가 해서는 안 될 야비한 행동이오”라고 임금이 답하는 게 아닌가. 밥을 다 먹고 나서 기운을 차린 적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적의 선두가 강의 절반을 넘어왔을 때 다시 장군이 공격 명령을 내려달라고 한다. 지금 적을 치면 적들은 오갈 데 없이 몰살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임금은 그 역시 점잖지 못한 행동이라고 나무란다. 결국 적들이 강을 다 건너고 나서 넓은 평원으로 나온다.
그때는 이미 적들의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뒤였다. 결과는 뻔하다. 대패다. 임금의 문제점은 전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줄 모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에 대한 깍듯한 예의가 아니라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의 승리다. 장군의 문제점은 병법의 ABC도 모르는 임금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 것이다. 가치관이 문제인 케이스다.
어느 날 쇼군이 한 사무라이를 부른다.
“이리 오너라! 오늘 우리 집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좀 다녀오거라.”
마침 주인의 아들과 동갑내기인 자식도 같이 데리고 간다. 셋이 오랜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니 강물이 급격히 불어난다. 사무라이가 제일 먼저 강을 건너 나무에다 밧줄을 동여맨다. 주인집 도련님을 먼저 밧줄을 잡고 건너오게 한다.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당연히 그렇게 한 것이다. 아뿔싸! 그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도련님은 익사하고 만다. 그러자 사무라이는 강 건너편에 있는 아들에게 소리친다.
“아들아! 너는 네 갈 길을 가라! 그리고 다시는 날 찾으러 집에 오지 마라!”
애 둘 데리고 나가서 주인집 아들은 죽이고 자기 아들만 살려서 돌아갈 면목이 서지 않는 거다. 그렇다고 자기 자식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딴 데 가서 자기 혼자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자식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거다. 이것 역시 가치관의 문제 아닌가.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권력·명예·부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승진·보너스·휴가 중에는? 자유와 평등 중에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햄릿의 독백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바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지 못하는 햄릿은 우유부단한 유형의 대표이다. 그런데 이 의사결정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가치관의 문제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는 자신이 정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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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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