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나는 오디오를 무척 좋아한다. 주로 실내악 위주의 클래식을 좋아한다. 일요일 오후에 서재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이때 첼로 실내악을 한 곡 들으면 그저 그만이다. 나만의 조용한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경험은 정말 좋다.
오래 전에 음악대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교수도 오디오를 좋아할 줄 알았다. “교수님은 어떤 오디오를 가지고 계세요. 성능이 어떤 건가요. 어떤 브랜드죠.”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좀 의외였다. 10년도 더 넘은 조그마한 미니오디오 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도 집에 오면 잘 안 듣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자기는 직업으로 음악을 하기 때문에 남의 음악을 들을 때 그냥 즐기면서 듣지를 못한단다. ‘흠. 저기는 저렇게 연주하면 안 되는데…’ ‘우와. 나는 절대 저 정도로 할 수는 없어’라는 식으로 자꾸 분석하면서 듣기 때문이란다. 직업으로 택할 만큼 음악을 좋아하지만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해야 성과가 나옵니다. 실천하실 거죠.” 리더십 특강에 나가서 내가 자주 외치는 상투적 구호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말해준 다음 고개를 끄덕이는 리더들을 향해 이 구호를 같이 외치는 것이다. 왜 이 다짐을 받는 건가. 안다고 다 실천하는 것은 아니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그래서 가끔 강연 중에 “교수님은 오늘 말씀하신 가운데 몇 개를 실천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면 그냥 빙그레 웃고 넘어간다. 사실 내가 강연 중에 하는 말은 다 스스로 뼈저린 반성 속에서 얻은 교훈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가 논어 옹야 편에서 하는 유명한 말이다.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안다고 다 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좋아하면 다 알아서 행한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 가지 테스트를 소개한다.
첫째, 자다 가도 그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는가. 둘째, 그 생각만 해도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는가. 마지막 결정적 테스트는 이 질문 하나를 자신에게 던져보라. “나는 이 일을 돈 안 받고도 할 것인가.” 긍정적인 답변이 바로 나오면 그것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돈 안 받고 하라고. 절대 안 해.” 이러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일을 하는데 돈을 안 준다면 섭섭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래도 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다소 속물 테스트인 것 같지만 내 경우에 잘 적용되는 것 같아서 소개한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이어서 공자가 말한다.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과연 즐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좋아하는 것과 즐긴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즐긴다는 것은 엄청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아하는 강도가 센 것이다. 다른 그 어떤 것과도 바꾸기가 싶지 않다. 그것 없이는 죽고 못 산다.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고 좋다. 그러면 그것을 즐긴다고 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을 주창한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 식으로 말하면 좋아하는 데에서 오는 쾌락의 강도가 오래 지속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한순간 반짝 좋았다가 다음 순간 바로 질린다면 그것을 즐기는 레벨에 갔다고 할 수 없다.
엄청 좋아하는 것은 다 즐겨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줄인다. 어떤 것부터 줄여야 효과적일까. 자기 분석을 해서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줄이기를 권한다. 좋아하는 것부터 줄여나가면 가면 갈수록 다이어트가 쉬워지지 않을까. 논쟁에서 상대방의 논점 중 가장 강한 것부터 논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싸움에서도 상대방 중에서 센 놈부터 꺾는 것이 중요하듯이.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아하지만 지방이 많은 것부터 확 줄이는 것이다. 결국 즐긴다는 것은 자신이 행하고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그것에 불만족하면 즐긴다고 할 수 없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 심지어 어려움과 고통이 닥쳐도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이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 관찰을 하라. 그리고 그것에 잘 대처하고 있으면 칭찬하라. 잘 못 대처하면 즉각 수정하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 자신을 격려하라.
고통 그 자체를 즐긴다는 말은 성립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만족해한다면 그것은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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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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