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오모 주지사, ‘24주 이후에도 낙태 허용’법안 서명
▶ 가톨릭계 “뉴욕주 역사의 비극…생명 수호운동 이어나갈 것” 성명
끊임없는 낙태법 논란이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 판결까지 뒤집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임신 24주 이후 출산 때까지도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RHA)에 22일 서명<본보 1월23일자 A2면>하자 종교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낙태 허용법은 동성애와 더불어 교계의 대표적인 논쟁거리 중 하나다. 여성의 낙태 권리가 우선인지,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우선인지를 놓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논란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의 가톨릭 교계 반발이 가장 크다. 때문에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던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신앙관에 교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낙태 허용법을 둘러싼 교계의 반응과 논란을 살펴본다.
■뉴욕주 역사의 비극
뉴욕주 가톨릭 협의회(NYSCC)는 주지사의 법안 서명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뉴욕주 역사의 비극의 장’이라며 침통해했다. 협의회는 ‘법안에 투표한 주의회 의원들도 임신 중 뱃속 생명체의 태동을 느끼고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기뻐했던 경험이 있지 않았냐?’며 법안 통과 후 크게 박수치며 환호한 정치인들을 비난했다. 이어 뉴욕주 역사의 처참한 순간을 기쁨으로 축하했던 사람들을 위해 가톨릭 신자들이 기도해 주길 주문했다.
뉴욕주 가톨릭 주교들도 성명을 내고 ‘인간의 생명 존중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법안을 진보라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법안 시행과 상관없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생명 수호 운동’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뉴욕의 올바니 가톨릭 교구 소식지에는 주지사 앞으로 보내는 공개서한도 실렸다. 올해 연두교서에서 가톨릭 신앙을 언급했던 자칭 신자란 주지사가 완전히 모순된 정치 행보를 보인데 대한 비판이 담겼다. 또한 낙태 찬반을 둘러싸고 교계 공동체가 겪어 나갈 어려움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뉴욕주생명권리(NYSRTL) 등 낙태 반대 단체들도 상식을 뛰어 넘은 악법이 마련됐다며 낙태를 합법화 한 1973년의 ‘로(Roe) v. 웨이드(Wade)’ 연방대법원 판결 뒤집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
교계를 주축으로 반대 목소리가 거센 이유는 ‘낙태는 곧 살인’이라는 종교적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다. 개나 고양이가 새끼를 낳을 때에도 하지 않는 행위를 인간 생명체를 두고 허용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며 합법적인 살인 면허를 발급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전까지 뉴욕주는 임신 24주 미만으로 낙태를 제한했었고 처벌도 가했지만 앞으로는 사실상 출산 때까지 아무 때나 원할 때 처벌 없이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다.
또한 의사가 아닌 간호사 등 기타 의료인들도 낙태 수술을 집도할 수 있고 심지어 수술 도중 아이가 출생하더라도 낙태 시킬 수 있다.
‘태아나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라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법안에는 여성의 건강에 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해석이 모호해서 지나치게 광범위한 법안 적용이 가능하다는 함정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낙태를 전면 허용하려는 꼼수란 비판도 나온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낙태 수술을 집도하게 한 것이 과연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 하는 것인가 반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쿠오모 주지사는 관련법 마련을 ‘뉴요커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도 반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오래 전부터 낙태를 반대해왔던 인물들로 관련 예산 삭감 등 낙태 반대 정책을 강화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열린 낙태 반대자들의 ‘생명을 위한 행진’에서도 반대 입장을 재확인시켜줬고 펜스 부통령도 낙태 반대 임산부들의 의회 초청 행사에서 생명의 존엄성 회복에 힘쓰겠다고 다시금 약속했다.
■낙태, 사망원인 1위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 집계하는 ‘월도미터스’는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총 4,195만명이 낙태(자연 유산 제외)된 것으로 관측했다. 암 환자(820만명)나 에이즈 환자(170만명)를 비롯해 흡연, 음주, 교통사고 등에 의한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월등히 많다.
미국은 2015년 연방질병통제예방국(CDC) 집계를 기준으로 전국 49개주에서 63만8,169건의 낙태 수술이 실시됐다.
뉴욕주는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고 이번 낙태 허용 법안 완화로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법보다 생명이 우선
이번 주 아이오와에서도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가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도록 지난해 제정한 관련법이 주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낙태 결정은 주법이 보호하는 여성의 권리이며 정부가 어떤 제재를 가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도 지난 연말 임신 12주 이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기독교계에서는 낙태법 논란이 여성의 신체 소유권 주장으로 이슈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며 법이나 권리가 초점이 아니라 ‘낙태는 생명을 다루는 문제’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미혼모들이 용기를 갖고 생명을 지키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도록 돕는 일이 선행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인 4명중 3명“낙태, 임신 3주 미만으로 제한해야”
■ 가톨릭 단체 여론조사
미국인의 상당수는 낙태를 허용하는데 상당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46년 전 낙태를 합법화한 ‘로(Roe) v. 웨이드(Wade)’ 연방대법원 판결의 재고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가톨릭 단체 ‘컬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이 마리스트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미국인 1,066명을 대상으로 올해 1월8~10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 4명 중 3명(75%)은 낙태를 임신 3주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중 공화당 성향의 응답자가 92%로 가장 많았고 이어 독립당(78%), 민주당(60%) 순이었다.
또한 연방대법원이 ‘로 v. 웨이드’ 판결을 재고할 때 각주별로 제한 규정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49%, 낙태를 불법으로 금지하라는 응답이 16%였으며 무제한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의료전문인들이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따라 낙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55% 대 35%로 찬성이 더 많았다. 정부의 낙태 예산 지원을 반대한다는 응답도 54%, 찬성이 39%였다. 이외 태아에게서 다운신드롬 장애가 발견됐을 때에는 62%가, 20주 이후 낙태 허용에 대해서는 59%가 각각 찬성했다.
태아를 엄연한 생명체로 인정한 미국인은 56%였던 반면 35%는 여성의 신체 일부일 뿐이라고 답했다. 수정과 동시에 생명이 시작된다고 믿는 미국인은 42%, 출생을 기점으로 시작된다는 응답은 1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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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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