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문성 가톨릭대 교수 ‘산스크리트어 통사론’ 완역
▶ “다른 종교 알수록 가톨릭 가르침 잘 보여”
‘산스크리트어 통사론’ 을 번역한 가톨릭대 교수 박문성 신부. <연합>
10여년 전 불교대학에서 인도철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된 천주교 신부가 이번에는 불교 경전 연구에 필수인 산스크리트어 문법서를 번역해냈다.
2007년 8월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2009년부터 가톨릭대학교에서 동양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박문성(52) 신부다.
그는 고전 산스크리트어를 통괄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으로 평가받는 야곱 사무엘 스파이져(1849~1913)의 ‘산스크리트어 통사론’(가톨릭대학교출판부 펴냄)을 우리말로 옮겼다.
고대 인도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정교한 언어로 통한다. 많은 불교 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됐다.
1995년 가톨릭대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사제 서품을 받은 박 신부는 상대 종교의 교리와 언어를 이해하고자 1998년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학부과정에 편입했다.
이번 책은 박 신부가 20년간 인도철학에 매달린 끝에 내놓은 결실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만난 박 신부는 “가끔 내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시간에 기도하거나 신학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출판을 결정하고도 내 실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창피해서 몇번을 그만두려 했다”고 겸손해하며 “앞으로 한글로 된 산스크리트어 고급 문법책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886년 출간된 스파이져 박사의 책은 지금도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펼쳐보는 필독서지만, 워낙 방대하고 난해해 여러 학자가 번역을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신부 역시 2007년 초 초벌 번역을 마쳤지만 오역을 줄이고자 수정과 검토를 반복한 끝에 이제야 큰 짐을 내려놓게 됐다.
그는 “신학 연구에는 필요 없지만 가톨릭교회가 인문학, 어문학 연구에 기여할 기회”라며 “산스크리트어와 불교, 인도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산스크리트어 통사론’을 우리말로 완역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책은 아니다.
하지만 산스크리트어를 전혀 모르는 이라도 이 책을 내기까지 박 신부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접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 신부는 “말을 잘하자는 게 아니라 선조들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라며 “분쟁은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상대방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에게 말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종교 간의 대화든 사회적, 정치적 대화든 그런 부분에 너무 소홀해요. 지나치게 단편적인 것을 보고 비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꾸준히 듣고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느덧 박 신부는 가톨릭 신학보다 인도철학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서양에서 온 그리스도교를 한국 사람들에 맞게 토착화하려면 한국인이 가진 종교적인 심성의 뿌리를 알아야 했고, 그 바탕에 불교와 인도철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인도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신학보다 인도철학을 더 많이 알게 됐지만 신앙적인 문제와는 다른 부분”이라며 “다른 종교를 알수록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학생들에게도 남의 언어를 알아야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서로 진리를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천주교 사제이자 인도철학 연구자인 박 신부에게 두 종교에 관해 물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서 출발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그리스도교, 자신의 업보에 따른 고통을 극복하고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는 출발점과 목적지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예수와 석가모니의 공통된 가르침은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구원, 불교의 해탈은 결국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며 “신앙체계가 다른 것은 서로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며, 이를 이해한다면 서로 존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신부의 깨달음은 종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갈등이 극에 달한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다름을 인식한다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그는 당부했다.
“말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이 되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고쳐주려 하기보다는 알아가려고 하는 노력을 서로 하면 좋지 않을까요. 선입견 없이 접근하고 이해하고 들으려는 노력이 분노가 가득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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