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류 벽 높아 번번히 좌절, 2000년대 들어서며 승전보… 마침내 연방의원 진출 ‘쾌거’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뉴저지주 연방하원 3선거구에 출마한 앤디 김 후보가 20년 만의 한인 연방의원으로 탄생했다.
미주 한인사회의 정치 도전사는 남가주 뿐 아니라 또 다른 한인 밀집지인 뉴욕과 뉴저지주에서도 1990년대 들어 두드러졌다. 1991년 변천수씨가 뉴욕 일원 한인으로는 최초로 뉴욕시의원 제20지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후 테렌스 박, 정승진, 케빈 김, 론 김, PJ 김, 존 최, 아그네스 김, 이명석, JD 김, 한양희, 주디 김, 로널드 김, 이지아, 이진우 변호사 등 14명이 주류 정치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가운데 2012년에 론 김이 주하원의원에 당선이 되면서 뉴욕주 최초의 선출직 한인 정치인 배출이 이뤄졌다.
1991년 첫 도전서 뉴욕주 첫 선출직 탄생까지
뉴욕 한인의 정치 입문의 첫 문을 연 변천수씨는 ‘논개’로 유명한 시인 변영로의 아들로서, 195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1961년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LA에 이민 온 뒤 1962년 LA 한인회의 전신인 남가주 한인회 창립위원장을 역임하다가 1970년에 뉴욕에 정착했다.
변천수씨는 1991년 공화당 후보로 뉴욕 시의원 선거에 출마, 4,000여 표를 얻어 약 1만5,000표를 얻은 상대 후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변씨의 도전은 당락 여부를 떠나 한인 정치도전사에 큰 의미를 가졌다. 이후 변천수씨는 또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뉴욕주 공화당 상임 위원을 지내는 등 뉴욕 한인사회에 대한 존재감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뉴욕 한인사회에서는 변천수씨 이후로 1990년대에는 정치에 도전을 하지 못했다. 백인 주류 정치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정치사회의 벽은 높았고, 한인 유권자들의 숫자는 아직 미비했기 때문이다.
한인들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 도전 움직임은 2009년 뉴욕시의원 선거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 당시 뉴욕시의원 선거에 퀸즈 플러싱 시의원 제20지구 민주당 예비선거에 데이빗 패터슨 주지사 보좌관이었던 론 김(한국명 김태석) 현 뉴욕주하원의원과 존 리우 시의원의 수석 보좌관인 존 최, 민권센터 회장인 정승진씨가 연이어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플러싱 정치연대 대표였던 테렌스 박은 뉴욕시 제20지구 시의원직에 출마하는 한인후보들의 단일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론 김 후보는 한인후보가 3명이 되자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정승진 후보는 초반에는 옌 초우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3위로 낙선했고, 존 최 후보는 4위를 했다.
게리 애커맨 연방하원보좌관 출신인 케빈 김씨는 제19지구 시의원 민주당 예비선거에 출마했고, 비영리기관 싱글스톱 USA 부회장 출신인 PJ 김씨도 제1지구 선거에 출마했으나 결과는 낙선으로 끝났다.
2010년 뉴욕주 상·하원 선거에서 케빈 김씨와 김광수 변호사 등이 주 하원에 도전할 의사를 보였지만 모두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두 도전을 미뤘다. 하지만 뉴욕주 제22지구 하원의원 민주당 지구당 대표선거에서 정승진과 테렌스 박씨가 남성대표로 출마했고, 리우 감사원장의 특별보좌관인 아그네스 김(한국명 김은철)은 파트A 여성대표로 출마했다. 이 지구당 대표선거에서는 정승진씨가 61.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8.1%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친 테렌스 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파트A 여성대표로 출마한 아그네스 김은 경쟁 후보가 없어 단독 출마하여 선거를 치르지 않고 선출이 됐다.
2012년에는 뉴욕 주 상·하원 예비선거에서 주하원 제40지구 민주당 후보로 론 김씨가 출마, 본선거에서 총 1만9,869표 중 1만3,460표, 득표율 67.7%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뉴욕시와 뉴욕주에서 선출직 한인 정치인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됐다. 론 김 후보는 1986년 7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온 뒤 마크 웨프린 뉴욕 시의원의 보좌관과 뉴욕주지사실에서 근무하며 정치적 역량을 키웠다.
2014년에는 뉴욕주 상·하원 선거에는 주하원 제40지구 민주당 후보로 론 김 의원이 다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고 2016년 3선에도 성공했다.
2016년 뉴욕시 민사법원 4지구 선출직 판사에 변호사였던 주디 김이 민주당 후보로 도전장을 던져 뉴욕 한인 최초로 선출직 판사에 당선됐다. 또 11월6일 치러진 뉴욕주 중간선거에서는 뉴욕주하원 40지구의 론 김 의원이 득표율 87%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표차로 4선 달성에 성공했다.
뉴저지 한인 정치 도전사
뉴저지는 미 전역에서 한인 선출직 정치인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으로 꼽힌다. 특히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뉴저지 3선거구 연방하원의원에 도전한 앤디 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창준 전 의원 이후 20년 만에 한인 연방하원의원이자 미 동부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탄생의 꿈이 이뤄지는 쾌거를 이뤘다.
뉴저지 한인 정치 도전의 역사는 지난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 시작됐다. 지난 1997년 한인 밀집 지역인 버겐카운티에서 카운티 의원 격인 ‘프리홀더’에 김석영 변호사가 출마하면서 한인 정치 도전이 본격화됐다. 1998년에는 전국에서 한인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타운인 팰리세이즈팍 시의원에 피터 서씨가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김석영 변호사와 피터 서씨 등이 연이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0년과 2011년에 데이빗 정씨가 공화당 후보로 팰팍 시의원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하지만 연이은 낙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뉴저지 한인사회에서는 한인 유권자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식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2004년 제이슨 김씨가 민주당 후보로 팰팍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미 동부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라는 역사를 쓴다. 김 전 의원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팰팍 시의원으로 활동했으며 팰팍 부시장을 맡는 등 뉴저지의 대표적인 한인 정치인으로 활동해왔다.
2005년에는 중부 뉴저지 에디슨 시장에 한인 1.5세 최준희씨가 당선돼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다. 최 전 시장은 미 본토에서 직선으로 당선된 첫 한인 시장으로 기록됐다. 더욱이 백인 유권자가 80%가 넘는 에디슨에서 당시 34세라는 젊은 나이이자 소수계인 최 전 시장의 당선은 한인사회를 크게 흥분시켰다.
2010년대들어 뉴저지 한인 선출직 정치인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팰팍에서는 제이슨 김 의원 이후 이종철·크리스 정 등 한인 시의원이 계속 배출됐다.
2013년에는 인구 30만의 뉴저지 최대도시인 저지시티에서 윤여태씨가 시의원에 당선됐다. 윤 의원은 한인 유권자가 6명뿐인 선거구에서 정당의 도움 없이 유권자 지지만을 기반으로 당선돼 한인사회를 놀라게 했다.
론 김 의원
크리스 정 시장
2016년에는 남부 뉴저지 캠든카운티 프리홀더에 수잔 신 앤굴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 한인 최초의 뉴저지 프리홀더 당선의 목표도 이뤄냈다.
2018년은 뉴저지 한인 정치사에서 가장 빛나는 해로 기록됐다. 30대 젊은 한인 앤디 김씨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 공화당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꼽힌 톰 맥아더 연방하원의원을 꺾고 뉴저지 3선거구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김 의원은 2017년 6월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정치 무명으로 여겨졌으나 과거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이던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아프가스니탄 주둔 나토군 사령관 참모를, 2013~2015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이라크 담당 디렉터로 활동한 이력이 주목을 받으면서 미 동부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탄생이라는 꿈을 이뤘다.
아울러 2018년에는 뉴저지 최대 한인 타운인 팰팍에서 최초의 한인 시장이 탄생했다. 팰팍 시의원으로 활동하던 크리스 정씨는 민주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의 꿈을 이뤘다. 특히 정 시장은 2018년 6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당시 현역 팰팍 시장이자 기존 정치 기득권을 상징하던 제임스 로툰도를 꺾어 이제 팰팍에서 한인이 명실상부한 주류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기준 뉴저지에서는 총 11곳의 시와 타운에서 15명의 한인이 시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2004년 1명에서 15년만에 15배가 늘어난 것이다. 올해에도 또 다른 한인 밀집 타운인 잉글우드클립스에서 글로리아 오 시의원이 오는 11월에 치러질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등 뉴저지 한인들의 정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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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우·서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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