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새벽 일찍 일어나 지난 밤 자정이 넘도록 다 못 챙긴 일들을 마무리하고 일곱 시에 집을 나섰다. 남편이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테니스 시합 대회에 참가하는 날인데 여덟 시부터 경기가 있어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바로 경기장으로 간다고 일곱 시 반에 공항에 내려주었다. 양손에 가방을 끌고 항공사 카운터까지 갔는데, 카운터엔 아무도 없고 벽에 달린 스크린엔 7시50분에 연다는 공고가 있었다. 좀 이상하다 싶어 전화기를 꺼내 이메일을 한참이나 뒤져서 내게 E-티켓을 보내 준 행사측 이메일을 확인했다. “아뿔싸! 이곳이 아닌 레이건 공항이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레이건 공항으로 갔다. 집에서 레이건 공항까지 바로 가면 택시비가 40달러 정도인데, 택시비로 그 두 배를 내야 했다. 레이건 공항은 터미널이 A, B, C로 나누어져 있는데 캐나다 항공은 제일 먼저 나오는, 작은 터미널 A에 있었다. 체크인하며 비즈니스 라운지를 물으니 터미널 B까지 걸어가서 그곳 검색대를 지나 들어갔다가 탑승을 위해 다시 A로 돌아와 검색대를 지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라운지에서 식사하며 일을 하리라고 터미널 B까지 걸어갔다.
검색대를 지나려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여권과 표를 검사하는 검사대에 섰다. 검사원은 내 표를 양쪽에 놓인 스캐너에 모두 대어보았지만 표가 읽히지 않아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표가 기계에 읽히지 않으니 들어갈 수 없다.” 나는 터미널 A 캐나다 항공 카운터로 급히 돌아가 항의해 티켓을 새로 받고 이미 망쳐진 내 아침 기운을 다른 이에게까지 전할 수도 있었다. 대신, 나는 주어진 순간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찾기로 하고 여유롭게 터미널 A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바삐 걸었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예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멈춰서 들여다보고 두 터널을 잊는 통로에 전시된 레이건 공항의 역사도 둘러보았다. 전에 여러 번 이 공항을 다녀갔어도 한 번도 이곳이 고고 사학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라는 걸 몰랐고 그저 막연히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져서 공항 이름이 그렇게 불리겠거니 했다. 전시를 둘러보니, 이곳은 17세기부터 아빙던(Abingdon) 플랜테이션이었고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손녀딸이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8년에 이곳을 내셔널공항으로 지을 곳으로 선택했고 고전적인 건축양식을 좋아한 그의 취향을 반영해 건축이 디자인되어 1940년 그가 건축기공식을 하고 그 이듬해인 1941년 6월에 처음 문을 열어 첫 항공이 시작되었다. 이후 1950년에 처음으로 확장공사를 한 후,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이 공항과 덜레스 공항을 포함한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공항 당국을 세워 이 공항을 확장, 현대화시켰고 1998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공항의 이름을 워싱턴 내셔널에서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로 바꾸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전시관을 나서니,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의 미술작품과 글도 전시돼 있었다. ‘총포를 맞은 트럭에서 많은 병사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 나는 탱크를 세우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순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는데 5분 안에 나는 다섯 발의 총을 맞았다. 두 팔과 오른쪽 다리와 복부에.’ 진솔하게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글과 세계2차 대전, 한국전, 베트남 전 용사들을 기리는 코너는 전쟁이 남긴 역사적 교훈과 희생자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아침도 굶고 목도 마르고 컴퓨터와 아이패드까지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한참을 걸어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기대가 어그러져 예상치 못한 것을 접하고 배우고 사색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명언을 좋아해 열심히 생각하며 준비하며 살지만, 때로는 이런 어긋난 순간도 마주치게 된다. 살다보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작은 실수로 일이 틀어지기도 하고 일이 기대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고 준비한 것에 집착하거나 고집하지 않고 기대에 어긋난 것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2018년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들어서며 한 해 동안의 어그러짐도 넉넉히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새해를 열심히 생각하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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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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