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로 온 시가지가 들떠있는 빠리, 여느 관광객들처럼 센느강가를 걷고 홍합탕을 먹고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고 샹젤리제를 따라 걷고 또 걷다가 개선문 앞에이른다.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사람들 사이를 밀려다니며 화가들의 작품들을 구경한다. 루브르, 사람들 머리와 머리 사이로 발돋움을 한 끝에 겨우 모나리자와 대면하고 아무도 없는 조각상들이 자리한 전시실에서야 비로소 미술관에 온것임을 실감
한다.
센느 강 다리 위에 섰을 때, 아! 이곳이 프랑스로구나, 젊은 시절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가고싶어 했던 나라, 바로 그 땅이로구나, 잠시 감개무량함에 젖었을 뿐, 우린 한시 바삐 그 복잡함에서 벗어나 노르망디로 향한다. 한적한 해변에서 수정이 박힌 돌멩이를 찾고, 한쪽 끝이 아취 모양으로 침식된 벼랑으로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Mont Saint Michelle,그 섬은, 아니 그 옛 수도원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인듯 바다위에 아련히 떠있다. 그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품있는 고고함을 간직하고있어, 돌아오는 길, 육지와 섬 사이를 연결한 길고 긴 바다길을 걸으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어느만큼 거리가 떨어진 우리 숙소의 지붕창으로 어둠이내린 바다, 그 위에 환히 불밝힌 몽생 미쉘이 환상의 섬으로 다가든다.
아침, 싸아하게 폐부를 통과하는 맑디 맑은 공기, 풍성한 햇볕과 가을 나무들, 사방에 펼쳐진 옥수수밭 위로 햇볕은 온화하게 퍼져나가고 옥수수대 끝마다 반짝이는 이슬방울들, 밭 사잇길로 수십마리의 양떼를 홀로 몰고가는 목동,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 크롸상과 베겟, 치즈, 농가의 오래된 돌벽과 창문들, 창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름모를 꽃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세잔느가, 고흐가 있다.
박물관에 박제된 모나리자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레오날도 다빈치가 그 수많은 관광객들에 둘러싸인채 저만치 두꺼운 유리 속에서 근접불가인 자신의 그림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모나리자는 어쩌면 돈과 이름의 가치에 휩쓸려다니는 군중과 그 위대한 미술품을 감상은 커녕 제대로 보기조차 힘들게 유리관에 박제시켜버린 사람들에게 연민의 미소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Ambois 성곽 위에서 저만치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넓은 루아레강을 내려다본다. 강 가로는 프랑스 특유의 삼각지붕들이 빼곡히 늘어서있다. 하늘은 엷은 구름으로 덮여있고 대기는 습하고 바람은 선선하다. 주인 없는 커다란 성채는 그 모든 영광과 권력, 음모,혁명, 피흘림의 역사를 품은채 말이없다. 성채의 왼편으로 작은 교회당인가 싶은 레오나르도의 무덤에서 경외에 찬 묵념을 보낸다. 성채가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제일
높은 곳, 나무 그늘 아래서 남편은 스케치에 열중해있다. 레오나르도의 영혼이 잠시 그에게 머물기를… .
흥망성쇠의 시간들을 모두 흘려보내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 흘러가는 루아레 강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바람은 습기를 몰아내고 제법 쏴아아 소리를 내며 나무들을 뒤흔든다. 노란 낙엽들이 공중에서 휙 돌다간 내 머리를 스치며 곤두박질친다. 대기는 회색빛으로 가라앉기시작하고 이만 우리는 이 성채의 오랜 휴면과 잠시 같이했던 시간을 떠나야 하리.
Saint. Emilion, 온통 포도밭이다. 포도나무들의 행렬이 촘촘한 가르마를 이루며 구릉을 달려내려오다 구불대며 기어오르는가하면 방향을 틀어 저리로 사라지다 다시 이리로 다가들며 사방의 구릉들을 뒤덮고있다. 포도밭 위로 햇빛이 바람결에 무수히 뒤채이고있다. 옛타워를 중심으로 부서진 돌담들이며 중세 그대로의 건물들엔 갤러리들, 와인가게들, 색색의 마카롱이 진열된 빵가게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사람들은 이 골목 저골목들을 누비고 다니며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광장마다 가득 들어찬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고 마시며 포도밭에 둘러싸인 옛 성곽 안에서 이 한낮, 실로 프랑스적인 대기를 만끽한다. 우린 이 마을 끝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햇빛과 바람을 즐긴다. 밤나무 아래서 뛰어노는 아이들, 부서진 성곽 너머 넘실대는 포도밭, 지극한 평화로움, 파란 하늘가를 지나온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며 묻는다. 이 평화 한가운데 앉아있는 그대여! 그럼에도 그대 안에 여전히 들끓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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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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