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약 열흘간 고국을 방문했다. 벌써 여러 해 동안 나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의 주요 교육자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고국 나들이를 해왔다. 올해는 교육청 최고 책임자인 교육감과 지역 담당 교육장 한 명과 같이 다녀왔다. 그들에게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울, 경기 인천 지역부터 시작해 세종, 여수, 목포, 나주, 대구, 경주, 부산, 김해, 거제, 춘천, 원주 등 전국을 돌며 참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교육감은 약 1년 반 전에 페어팩스 카운티에 부임했다. 그런데 첫 해에는 시간을 비우기가 힘들어 올해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교육장은 5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카운티 공립학군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책임자이다. 랭리, 마샬, 옥튼, 매디슨, 그리고 사우스 레이크 고등학교 지역의 약 40개 공립학교들이 그의 관할이다.
내가 교육청의 고위 직원들과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에 대해 좀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처럼 다인종, 다문화 배경의 학생들이 많이 있는 학군도 드물다. 아시안 학생들의 비율은 현재 20% 가량인데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인 학생들도 5% 정도나 된다. 이런 학군에서 교육의 최고 책임자들을 위한 다문화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 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 상호 관심사에 관해 의견도 교환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들뿐만이 아니라 정겨운 시골의 가을 풍경, 그리고 각종 음식과 한국인들의 따뜻한 손님대접 예절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고 카운티 내의 한인 학생들과 부모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교육위원인 내가 직접 안내하면서 나의 고국을 소개하는 일을 보람되게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다녀오는 한국 방문에 필요한 경비에 교육청으로부터의 재정 지원은 전혀 없다. 그러기에 그 때마다 나는 여러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한국의 여러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받는 강연료로 비용의 일부를 충당하고 지인들의 도움도 받는다. 이번 방문에 있어 주미대사관의 교육관과 교육원장이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이 칼럼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두 분을 포함한 모든 도움 준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번 방문 중 교육감이 느낀 점들이 많았을텐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대구광역시 부교육감이 초청한 점심 식사에서였다. 식사의 마지막으로 돌솥밥이 나왔다. 고구마와 은행알이 섞어 지어진 따뜻한 밥이었다. 그런데 그 밥을 돌솥에서 덜어 내 먹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누룽밥을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교육감과 교육장이 누룽지나 누룽밥을 본 것은 당연히 처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누룽밥을 먹는다는 것이 신기했고 맛도 참 구수해서 좋았던 것 같았다.
그 누룽밥에 대해 내가 설명을 곁들였다. 한국 사람들이 참 좋아 하는 누룽지와 누룽밥은 별식으로 여겨진다. 내가 어렸을 때 누룽지는 그냥 먹거나 설탕을 뿌려 먹는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누룽지는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누룽지는 제대로 된 밥이 다 떨어져 남은 부분이고 먹을 것이 더 이상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기도 했다. 먹을 누룽지마저 없다는 표현도 있다.
한국이 항상 오늘날처럼 잘 살았던 게 아니다. 정말 많은 가정들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난했던 시절 나의 어머니도 다른 식구들이 먼저 식사를 다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누룽지로 당신의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누룽지가 얼마 없을 때는 물을 더 많이 넣어 끓인다. 고픈 배를 물로 채우는 것이었다. 누룽지는 그런 양면성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듣던 교육감과 교육장이 가슴으로 무언가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가난은 비단 오래 전의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곳에서 매일 있는 일이며,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여겨지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도 오늘 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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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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