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 한국방위산업의 숨은 이야기와 유치 과학자들의 활동
필자(왼쪽)와 북한의 AN-2.
1970년대 초에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재래식무기 현대화와 항공우주무기의 개발을 계획하였고, 이를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발족시켰고 신임소장 심문택 박사로 하여금 해외과학자를 유치하도록 지시했으며 외국국적자도 받아들이도록 했다.
내가 미공군의 우주국을 지원하는 연구소인 Aerospace Corporation에서 군용스페이스 셔틀과 ICBM에 관한 일을 하고 있던 1972년에 ADD소장에게서 자기와 함께 일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나는 심소장과 함께 미국의 한인과학자들을 면접하였고 심소장과 함께 유럽의 방위산업계와 연구소등을 약 한달간 시찰한후 항공우주담당 부소장으로 부임하면서 1974년에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다락대 야외시험장과 박정희 대통령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국산 재래식무기의 시범 사격이 있다고 해서 다락대 야외시험장에 안내 받았다. 넓은 야외 시험장내의 항공기 격납고 모양으로 생긴 건물 안에는 100명도 넘을 것 같은 많은 장군들이 야전복을 입고 모여 있어 섬뜻 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유일한 민간인이었고 미국에서 온 박사라고 장군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질문과 인사가 많아서 우쭐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잠시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도착하였다. 이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귀국인사를 하였다. 첫 인상이 강인하고 믿을 만한 지도자라고 느꼈다.
그 당시에 국방연구사업은 상공부출신의 청와대 제2 경제수석에게 직접지시를 하는 등 대통령이 손수 챙기는 식으로 급속히 진행되었다. 박대통령은 특히 유치과학자를 아끼고 대우를 잘하였다. 매년 년초에는 연구소를 방문하여 연구진행보고를 받고 연구원들을 격려하였다.
한 번은 소장과 나를 청와대 대통령 사저에 외부인사 없이 저녁식사에 초대하였고, 대통령이 Chivas Regal 양주를 직접 따라주고 그 당시 박근혜양은 안주 접시를 날라다 주는 등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대접받은 일도 있다. 당시 박근혜양은 engineer출신답게 과학자들의 모임 등에도 자주 나가는 등 연구원들에게 관심이 많았었다. 지금의 박근혜 전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세계최고가 된 포 제작기술
다락대에서 선보인 재래식화기 시범은 대단히 인상적이기는 하였으나 대개가 단시일내에 국산화하려고 기존무기를 모방이나 역 설계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작은 고장이 잦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105mm곡사포가 시험발사 중 폭파하여 청와대 비서관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는 미 육군조병창의 수십년 경력이 있는 포 제작기술자 약 10명을 초빙하였고 미군사고문단(JUSMAG)의 항공우주박사인 크리스만 대령과 내가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 기술자들을 주로 창원지방에 몰려 있던 방산업체에 배당하여 현장기술을 직접 전수하도록 하였다.
세계최고기술자들이 공장에서 직접 기계를 조작하며 지도한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그들이 임무를 마치고 작성한 최종보고서는 한국의 포 제작기술은 unqualified success라고 결론 짓고 있었다. 이 말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공적이라는 뜻인데, 정부의 한 사무관이 qualify라는 단어에 un이 붙었기 때문에 정 반대로 해석하여 혼선을 빚은 일이 있었다.
추진제 공장을 고철로 위장
우리의 미사일 개발목표는 사정거리 500km에 탄두 중량 500kg이었으며 이는 비밀사항이었다. 탄두중량에 대해서 공식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핵탄두기술로 500kg정도면 가능 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분소까지 두고 있던 미군사고문단(JUSMAG)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로켓개발에 필수적인 추진제제조시설은 미국무부의 수출통제대상으로서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Lockheed Propulsion Company(LPC)가 정부용역이 끊겨서 문을 닫았는데, 어느 업자가 이 추진제 시설을 고철로 위장해서 우리에게 판매하여 우리는 추진제 공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위장매입한 것이 곧 탄로나 관련자들이 줄줄이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서울에 체류중이던 록히드 부사장 Billy Tuck도 조사받았다고 내게 머리를 흔들면서 얘기 하였다.
비밀해제 된 한 국무성 문건에는 이 시기에 미국이 로켓기술을 남한에 이양할 것인지 아닐지를 국무성과 국방성이 토론을 했다고 나와있는데, 추진제공장의 위장도입이 무사히 해결 된 것을 보면 로켓기술을 미국은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JUSMAG의 협조도 잘 되어 소형 로켓의 시험발사도 하였고, 첫 시제로켓은 지대공 미사일인 NIKE-HERCULES의 일부를 모방개조하여 후에 백곰이라고 불리는 미사일로 발달되기도 하였다.
호랑이를 그리다 고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1975년 봄 어느 날 JUSMAG의 부단장인 Montgomery 대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자기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제 우리의 최종목표가 핵탄두를 운반하는 로켓개발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며 긴장된 표정이었다. 우리가 그 동안 그렇게도 보안을 지키려던 최종목표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중반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수상과 만난 필자.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각종 파티에 가면 한국 정치가, 국회의원, 고급관리들이 “너 한테만 얘기해 주겠는데…” 하면서 정보들을 귀띔해준다. 그것들을 JIG SAW PUZZLE을 맞추듯이 맞춰보니 그러한 그림이 되더라고 했다. 연구소에는 외국의 고위급방문객이 자주 찾아왔다. 대개는 조용히 브리핑을 듣고 가지만, 가끔 우리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직선적으로 물을 때가 있다. 심문택 소장은 wit가 있는 사람이어서 “호랑이를 그리다가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고 폭소를 유도하며 넘겼다. 실제로 우리는 고양이를 그리게 된 것이다.
핵탄두 개발계획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였거나 인정한 적이 없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공식 기구표에 핵이라는 말은 없고 담당기구도 없다. 다만, 내가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국방과학연구소에 당시 김종필총리가 방문했다. 그 때에 우리 연구소 간부 몇 명이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 핵개발에 성공하면 한 사람당 1억원씩 주겠다고 웃으면서 말했던 것은 기억한다.
로켓개발에 추진제공장이 필수적인 것처럼 핵무기개발에는 핵 재처리시설이 필요하다. 한국은 비밀리에 프랑스에서 핵 재처리시설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이를 눈치 챈 미국정부는 주한 미대사관이 중심이 되어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인하고 미국 국무부에 이를 보고하는 한편 한국내의 유치과학자중에서 관련이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접촉하여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또는 미국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고민했던 유치과학자도 있었다. 결국은 미국이 프랑스에 압력을 가해서 핵 재처리시설계약을 취소시켰고 우리의 핵미사일계획은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미사일개발도 사정거리와 탑재 하중이 축소되고,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방과학연구소의 미사일담당 연구원수도 대폭 감원되었다. 대신에 Cruise Missile은 무인비행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그래서 국방과학연구소는 크루즈 미사일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당시에 나와 다른 일로 친분이 있던 영국에서 공부한 물리학자가 대한항공빌딩 한 구석에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프랑스의 Framatome에너지회사와 가끔 연락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핵발전소 관련 연락업무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 줄 알고 별 생각없이 가까이 지냈다. 핵개발노력이 무산된 직후, 그는 자기가 국방과학연구소의 핵탄두담당 부소장이었으며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 연구소 밖으로 나와 있었고 차량과 월급도 연구소에서 그 동안 지원받고 있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같은 부소장으로 나는 운반체인 로켓 책임자이고 자기는 그 위에 올려 놓을 핵탄두책임자인데 이제까지 밝히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고 있었으니 미국대사관이나 심지어 JUSMAG 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기관에서 어떠한 핵개발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핵무기개발은 이미 이론연구가 아니라 하드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링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금수품일 장비와 부품, 시험장시설, 시험평가기술의 개발 등을 고려 할 때에 국내에서 핵무기개발 연구가 비밀리에 많이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투기 선정에 얽힌 이야기와 무기상인
1970년대 초에는 공군이나 정부의 항공담당연구소가 없었고 내가 국방과학연구소 재직시에 일부 담당했을 뿐이었다. 청와대는 대한한공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전투기사업을 지원하라고 지시하였고 내가 자리를 대한항공으로 옮기면서 전투기생산에 관여하게 되었다.
공군출신은 듣기 거북하겠지만, 당시의 공군은 힘이 약해서 정치와 권력에 많이 흔들리고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1979년에 있었던 제2차 전투기사업이었다.
공군이 선정후보기종으로 내 놓은 것이 Douglas의 F-4 , Northrop의 F-5, Vought의 A-7, 그리고 Fairchild의 A-10등의 4기종이었다. F-4는 전폭기이고 F-5는 요격기이다. 반면에 A-7은 지상근접공격기로 아음속이며 A-10도 지상공격기이지만 주로 탱크격파에 위력이 크고 역시 아음속이다. 이들 4기종은 각자 용도가 다른 비행기이다. 이 들 중에서 한 기종을 선택하라는 것은 마치 사과, 복숭아, 배, 감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고르라는 것 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기종선정이 된 원인은 고위 공직자, 정계의 실력자, 업계와 무기상 등의 로비를 공군이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이들 4개 미 항공회사 조사단 단장으로 각회사를 방문하였는데 마음이 편치 못했다.
Fairchild사에 Becker라는 부사장은 내가 자기에게 협조적이라고 착각했는지 우리 조사단에게 특별히 친절했다. 한국에 조사단이 돌아오고 A-10이 제일 먼저 탈락하자 Becker 는 발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TIME과 국제군사전문지 INTERAVIA 에 내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Boeing사에서 훈련 받은 박사가 민간업체와 밀착하여 한국의 전투기 사업에 부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모함기사를 냈다. 그리고 내가 외국출장 중에, 자기와 내가 A-10이 한국에 가장 필요하다고 동의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발신자 주소도 없는 봉투에 넣어 사방에 보냈다.
내가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사방에서 질책과 비난의 메시지와 편지 등이 책상에 잔뜩 쌓였고 청와대비서실에서는 와서 해명하라고 하고 배신자 취급을 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해명을 하고 미국대사와 Fairchild 의 Grossman회장에게는 항의의 편지를 보냈다. 미국대사관에서는 Stern부대사가 이 사건은 한 민간회사의 사건이고 미국대사관하고는 관련이 없다는 답장이 왔고, Grossman 회장은 정중한 사과의 답장이 왔으며 얼마 후에 Becker는 해고되었다고 들었다. 이것으로 내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생각은 안 했지만 바쁘고 귀찮아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 미국항공회사 중역들의 한 모임에서 Becker얘기가 나왔다. 그들은 책상을 치면서 “Dr. Hong! 당신은 미국에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그자를 그대로 놓아 주었소?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으면 지금 이 고생 안 하고 고급주택에 요트로 세계일주나 다닐 텐데.” 라고 한 바탕 웃은 일이 있다.
이 기종선정은 결국 막판에 공군이 직접 나서서Northrop의F-5로 결정되었고 대한항공이 제조업체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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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식 박사(전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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