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단 배’와 같다는 옛말은 인생살이에 있어서 막힘이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불과 열흘 전 까지도 브렛 카버노 연방 공소법원 판사에게 꼭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두어달 전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 판사로 임명한 후 상원법사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카버노였다. 그는 낙태를 합법화 시킨 대법원 판례를 못마땅하게 보는 그의 저술 및 판결문들 때문에 진보계의 격렬한 반대를 받기는 했지만 공화당이 51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의 분포에 더해 트럼프 정서가 압도적이라서 자리보존을 위해 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이는 세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 때문에 대법원으로의 승차는 ‘떼논 당상’ 쯤으로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원 법사위의 민주당의 최고참인 다이안 파인스타인 의원이 카버노가 17세 고등학생 시절 만취 상태에서 15세 여고생에게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편지의 내용을 10일전에 공개하자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7월중에 그 편지를 입수한 파인스타인이 그동안 잠잠했었던 이유에 대해 피해자에게 그 내용 공개를 종용하자 그가 자신에게 닥칠 후환이 두려워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겠다고 했기에 그 의사를 존중해서 그리했다는 파인스타인의 변명은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워싱턴 포스트에서 16일자로 그 여자가 현 팔로앨토 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있는 크리스틴 블라시 포드 박사로 1980년대 초에 고등학생들의 파티에서 술 취한 카버노와 그의 친구가 자기를 침실로 데리고 가서 카버노가 그의 옷을 벗기려 했고, 소리를 지르고자 했을 때 입을 막아 죽는 줄 알았다가 간신히 화장실로 피신했었다고 자세히 설명한 것이 보도 된다.
그러자 매스미디어는 1991년에 있었던 클라렌스 토마스 현 대법원판사의 청문회에 대한 회고담으로 가득 찬다. 그가 평등취업기회 위원회 위원장 시절 자기의 보좌관이던 애니타 힐에게 극심한 성희롱을 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힐과 토마스가 법사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대결했었던 역사를 말한다. 당시에는 민주당이 상원의 다수당이라서 민주당 의원들 11명과 공화당 의원 10명이 법사위의 위원들이었었는데 모두가 남자들이었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은 토마스의 노골적인 성적 농담에 대한 힐의 증언을 들으면서 사사건건 힐의 품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 여성 유권자들을 격분시켰었다.
그래서 1992년의 선거에서는 여성들의 높은 참여율에 힘입어 여러 여성의원들이 등장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파인스타인 상원의원 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미투 운동의 여파로 오랫동안 여성들을 성폭행해 왔거나 농락해왔던 정계와 문화계의 거물들이 줄줄이 퇴출 당해온 분위기 때문에 여성유권자들이 두려워 트럼프와 공화당이 워낙은 20일에 예정됐던 카버노에 대한 투표를 연기하고 포드 박사와 카버노를 상대로 24일에 청문회를 소집하기로 한 것이다.
포드 박사의 변호인 쪽에서는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주장대로 FBI가 먼저 조사를 한 뒤에나 청문회에 나오겠다고 제안한 것을 글래슬리 법사위원장이 거절하고 24일을 고집하자 24일은 너무 촉박하니까 여러 형태의 위협을 받고 있어 자기 집에도 머무를 수 없는 포드 박사의 신변만 보호해 주면 내주 중 어느 날이건 출두하겠다고 응수했다. 따라서 카버노와 포드의 대결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카버노는 물론 포드에게 성폭행 시도를 한 적도 없거니와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도 결코 비슷한 행위를 한 적도 없는 자기의 결백성을 강조할 것이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여자들이 겪는 불이익은 엄청나다는게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그런 피해자들은 자기들의 사회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폭행 폭로자’라는 낙인을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함구하는 현상도 있다는 것이다. 포드 박사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2012년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상담에서 비로소 카버노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보도도 있고 보면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카버노를 잘 아는 65명 이상의 여자들이 카버노는 전혀 여성을 폭행할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문에 동참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지 식별이 쉽지 않다. 포드가 성폭행시도를 당했을 때 같은 방에 있었다는 마크 저지라는 카버노의 명문사립 조지타운(대학) 예비학교의 동창생은 자서전 같은 책에서 자신이 학생 때 술 취해 정신을 잃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술회했단다. 카버노도 혹시 술 취해서 의식불명 때 저지른 일이 아닐까? 좌우간 다음 주중에는 그가 최고정점에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또는 대법원 판사로 이름을 남길지가 판명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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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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