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셰익스피어가 물었다.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하지만 난 경제전문가이니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도록 하자. 숫자에 담긴 것은 무엇인가?
척 슈머와 마틴 하인리히 등 두 명의 상원의원은 “대단히 많다”고 답한다.
지난주 이들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예측하는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이 성장에 따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중산층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이 돌아가는지도 함께 분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그건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다.
나는 GDP를 하자 투성이의 무용한 통계라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다. GDP는 다양한 목적에 쓰임새가 있는 수치이지만 그 자체가 경제 성공의 정확한 척도는 아니다.
이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숫한 이유가 있으나 결정적 이슈는 GDP가 대다수 사람들의 살림살이와는 거리가 먼 평균소득의 변동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베조스가 술집으로 들어서면 해당 술집 주인의 평균소득은 까마득하게 치솟아 오르겠지만, 베조스가 아닌 술꾼들 가운데 그 이전에 비해 더 부유해질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의 임금이 꾸준히 오르던 시절에는 구태여 경제성장의 주된 수혜자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상당수의 미국인들에게 전반적인 성장과 개인 소득사이의 고리가 끊어진 듯 보인다.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정체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남성 근로자들의 중간소득은 1979년에 비해 떨어졌다.
다른 한편에 선 사람들의 소득은 국가 전체 소득보다 훨씬 빠른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의 주요 기업 CEO들의 소득은 평균적인 근로자들의 소득의 270배로 높이 치솟았다.
1980년까지만 해도 두 그룹 사이의 격차는 27배에 불과했다.
전반적인 경제성장과 개인 소득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분리가 발생한 진짜 이유는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대중의 시들한 반응과 2017년도에 단행된 감세의 뒷면에 숨어 있다.
최근 분기들의 GDP 수치는 양호했지만 성장의 대부분이 치솟은 기업 이윤으로 돌아간 반면 중간실질임금은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헌데 이런 팩트들이 어떻게 경제성장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먼저 전체 미국인구의 각 부분에 성장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추적하는 ‘국민분배계정’(distributional national accounts)을 필요로 한다.
이 같은 계정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토마스 피케티, 에마뉴엘 사에즈와 가르비엘 주크먼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미 지난 반세기에 걸쳐 상당히 구체적인 계정 견적(estimated accounts)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주된 메시지는 성장의 혜택이 전체 인구의 소득상위층에 불균형하게 집중되는 반면 아래쪽 절반은 성장에 따른 과실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도 놀랄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중산층은 이전보다 뒤처지고 있긴 하지만 부가급여(fringe benefit) 덕택에 일부 공약수가 가리키는 것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독립적인 경제전문가들의 추정치와 미국 정부의 정기 보고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부가 전문가들에 비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훨씬 많이 갖고 있고, 일반 대중과 정치인들 모두 정부가 하는 일에 더 높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진보성향의 싱크탱크인 ‘공평성장을 위한 워싱턴 센터’(Washington Center for Equitable Growth)가 슈머-하인리치 법안과 같은 것을 위해 캠페인을 펼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분배계좌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사람들은 분배 계좌를 만드는 것은 까다로우며, 서로 다른 정보공급원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경험을 근거로 추측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건 GDP 추정치를 비롯한 기존의 국가 계정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프로세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경제 수치는 완벽하거나 비난의 여지가 없어야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이 합리적이라면 슈머-하인리히 법안은 머지않은 장래에 법제화 될 것이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이런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가분배계정이 드러낼 진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공화당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 사회의 불운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제안할 때마다 보수주의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사회주의자”로 몰아 부칠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이 사회주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핵심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만약 전국민 헬스케어가 사회주의라면 얼마든지 와도 좋다.
그러나 우파들은 불평등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허용하지 않는다. 누군가 경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다른 계층의 형편을 측정하려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규정해 비난한 릭 샌토룸 전 상원의원이다.
그러나 그건 우리 경제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논의나 연구를 억누르려는 우파의 일반적 시도 중에서 특히나 우스꽝스런 버전이다.
공화당의 기본 입장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로 귀결된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진보주의자들이 국가분배계정이라는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부분적 이유는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대의명분(cause)에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지식은 객관적으로 무지보다 낫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누가 경제성장의 실질적인 수혜자인지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고, 알아낸 결과를 널리 전파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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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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