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운하 투어.
멋모르고 동남아 5개국 강행군 여행을 하고 오랫동안 아팠던 나에게 해외여행은 패키지여행이 안성맞춤이다. 우리 부부는 5대양 6대주를 패키지여행으로 대충 돌아보고 그중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에서 한동안 현지에서 머물며 살아볼 계획이다. 여행지를 선택한 뒤엔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백 번 듣는 것과 직접 한 번 보는 것은 역시 다르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유럽에 가까운 러시아의 서쪽과 북유럽을 2주 정도로 스치듯 지나온 느낌을 적어본다.
러시아=호텔마다 여권 보관해야
한국여권은 어느 나라든 거의 무비자라고 하는데 제멋대로 잘난 대통령 덕에 미운털이 박힌 미국은 비싼 러시아 비자를 받아야하고 도착하는 호텔마다 여권을 여행허가증처럼 보관했다가 떠나는 날 준다.
아직도 소련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고, KGB 비밀경찰이 어딘가에서 감시할 것 같았지만, 기독교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의 깊이가 두텁고 정통성을 갖고 있다. 교회보다 높은 황제의 권위로 가는 곳마다 끝없이 넓고 크며 온갖 금은보화로 장식된 성당과 궁전을 보고 또 보니 머릿속이 교회와 궁전으로 뱅뱅 돌아간다.
그러나 이것도 달리 생각하면 그 당시의 왕들이 백성을 이끌고 전쟁을 벌려 다른 이의 것을 약탈해오든지, 아니면 몇 십 년이 걸리는 궁전과 교회를 짓는 국가적 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어찌됐던 그동안은 먹고 살 수 있던 것이라 해석해본다. 또한 영화, 시, 소설, 그림, 음악 같은 예술 작품은 적어도 2번 이상은 만나야 제대로 된 참맛을 알게 해준다. 학생 때 단체관람으로 보았을 땐 무지 길고 지루했던 닥터 지바고란 영화를 다시 보니 혁명, 자작나무숲, 눈 덮인 설원, 사랑 등이 가슴 저리게 다가오며 푸시킨, 톨스토이, 000스키로 끝나는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러시아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가장 붐비는 때를 지나 관광객이 거의 없는 추운 궁전에서 천천히 그림과 보물을 보고 싶다. 정말 겨울에는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고 바다도 얼을 정도로 추울까? 파도가 얼면 어떤 모양일까? 눈 쌓인 자작나무숲에서 사우나를 하고 개썰매를 타고 달리고 싶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모스크=백야의 산책
밤 9시가 넘어서야 불그래 노을이 지고 새벽 3시면 다시 해가 뜨는 여름의 백야 덕분에 밤을 잊은 우리들은 시원한 밤공기를 즐기며 시내로 밤 마실을 다녀왔다. 다음날 새로운 모습으로 만난 모스크의 크레믈린 궁, 푸틴의 집무실, 공산당 회의장, 한 번도 쏘아보지 못한 뻥 대포, 울리지 못한 깨어진 큰 종, 레닌의 묘, 아름답다는 뜻의 붉은 광장을 거닐었다. 러시아의 마스코트로 꼽히는 성바실리 성당은 만화영화에 나오듯이 알록달록한 캔디처럼 귀엽다.
자유시간에는 예전엔 귀족들만 마차를 타고 쇼핑을 즐겼던 굼 백화점엘 갔는데 유로나 달러는 받지 않고 러시아 루블만 받으니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사려면 카드를 꺼내야하고, 아직도 사회주의가 남아선지 물건을 팔려고 애쓰지 않고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답도 심드렁하고 무뚝뚝해서 미국이나 한국에선 벌써 잘렸을 것이다. 거의 고꾸라지듯 끝없이 내려가는 모스크의 지하철은 역마다 주제에 맞게 꾸며져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천장벽화와 울림소리가 멋졌고 전쟁 시에는 방공호로 쓰려고 해서인지 규모가 엄청나다.
러시아 몽마르트르라는 아르바트 거리에는 푸쉬킨 생가와 동상이 있다. 외조부가 흑인인 푸쉬킨은 검은 피부, 작은 키, 곱슬머리였지만 귀족이고 부자여서 아름다운 나탈리아를 부인으로 얻었지만 결국엔 그녀로 인해 결투를 하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시를 남기고 37살 젊은 나이로 죽었으나 그 여인은 3번씩 결혼을 하며 오래 살았다. 뜻밖에 빅토르 최의 추모공간을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났다. 그는 고려인 3세로 저항의 록커였으며 혈액형, 변화라는 노래는 쉬운 리듬과 후렴구를 갖고 있어 윤도현 밴드의 음악과 비슷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북방의 베니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피오드르 황제에 의해 수백 개의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북방의 베니스라 부르며, 지식인의 로망이었던 베르사이유를 본뜬 황제를 위한 여름궁전은 분수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되자 144개의 크고 작은 분수들과 황금분수대와 인공폭포에서 물이 솟구친다. 어떤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땅의 높낮이를 이용해 만든 게 놀랍고, 그 당시 항구에 도착한 외국사신들이 올라오면서부터 알아서 조아리게 기를 팍 죽인듯하다.
끝없이 돌아가는 긴 줄을 따라 들어선 왕비의 여름궁전에선 왕족들의 초상화, 높은 천장까지 닿도록 파란 도자기로 만든 벽난로 방, 술판과 춤판이 벌어지던 여러 방들을 끝없이 구경하다 호박 보석방으로 들어섰다. 여러 가지 색의 호박모자이크 밑에는 정교한 밑그림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호박을 좋아하는 중국관광객들에 밀려 밖으로 나오니 땀에 폭삭 젖어있다.
예전에는 여왕의 궁전인 어느 방에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점심을 우아하게 즐기고 이곳에선 어디서나 보이는 이삭성당에 들어가 멀리서 병마와 싸우는 그리운 친구의 쾌유를 빌며 촛불을 밝힌다.
노르웨이 전설의 이야기를 재연하는 춤추는 훌트라 마녀와 효스 폭포(위). 또 다른 관광거리,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
백조의 호수
수도원이 보이는 백조의 호수를 거닐며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을 했다던 공원길은 한적해서 모처럼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젊은 날 한 달에 한번은 문화공연을 즐기는 친구들과 발레를 처음 본 날 우리는 모두 두 눈을 감고 백조처럼 목을 앞뒤로 흔들며 졸았는데, 이번엔 백작부인처럼 쌍안경까지 준비해서 발레리나와 남자 발레리노의 표정연기와 잘 빠진 몸매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졸지 않고 남편과 즐기고 나니 다음엔 호두까기 인형과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보고 싶다.
세계 3대 박물관이며 1번씩만 보아도 20년 넘게 걸리는 에르미타쥬 겨울궁전 박물관에 그득한 고갱, 다빈치의 걸작들의 진품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황제의 권위는 어디까지인가 싶다.
핀란드로 향하는 고속기차는 안락하고 쾌적했으며 러시아와 핀란드 공무원들이 여권에 도장을 꽝꽝 찍으며 출국과 입국수속이 끝나고 4시간 정도 지나서 헬싱키에 도착했다.
덴마크의 상징, 코펜하겐의 인어 공주상(위). 모스코바 바실리 사원(왼쪽)과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 최를 기리는 벽(오른쪽).
북유럽=뚱뚱이가 없는 나라
스칸디나비아반도는 문화 역사적으로 연관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이른다. 세계최고의 국민소득으로 대학까지의 무료교육, 의료혜택, 노후연금, 사회보장제도, 실업수당 등 높은 복지수준으로 여유로운 삶의 태도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세계에서 잘 나가는 심심한 천국이다.
세상 이치 모든 것은 마찬가지여서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될 줄 누가 알았을까? 춥고 돌과 물만 많아서 전 국민의 4분의 1이 이민을 가거나 바이킹의 후예답게 해적질을 해서 살았던 얼음나라들이었는데 빙하가 쓸고 내려간 깊은 계곡에는 싱거워진 바다와 호수물이 들어와 여름이면 몇 백명 사는 작은 마을에 몇 천명이 타는 커다란 크루즈가 자고 나면 창밖에 몇 척이나 정박해있는 세계인이 꿈꾸는 여행지가 될 줄 생각이나 했을까?
땅은 넓고 돈이 많으니 정말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무보수로 자전거를 타고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국민을 위하여 일하니 신이 난다. 문득 한국에서 국민의 종으로 봉사하겠다는 후보자들을 종처럼 무보수로 일하게 한다면 서로 뽑아 달라고 할지 의문이 든다. 병나면 나라에서 고쳐줘야 하니 미리미리 깨끗한 물과 건강한 먹거리를 먹여서인지 이곳에선 뚱뚱이가 거의 없고 몸과 마음이 튼튼해 보이는 건 햇빛이 빛나는 여름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해가 없는 북유럽의 어두운 슬픔, 외로움, 절망의 극대화를 애타게 표현하여 부르짖는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보고나니 햇빛을 너무 받아 퉁퉁하고 따스하고 게으르며 태평한 것도 우리의 복이라 느낀다.
헬싱키=국민음악가 시벨리우스
핀란드는 러시아의 한 부분으로 쭉 살다가 독립한지 오래지 않아서 러시아와 성격이나 외모도 비슷하고 한반도의 1.5배 면적에 한국의 강남구 인구를 갖고 있다.
핀란디아를 작곡한 국민음악가인 시벨리우스공원엔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조형물이 서있고 한쪽에서 파란 눈의 핸섬한 청년이 마이웨이를 바이올린으로 멋있게 연주를 하고, 이어서 풍채좋은 아저씨가 목청 크게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
거대한 암석을 파내어 구리지붕을 덮은 돌교회는 우주선의 내부같고 종은 없으나 녹음된 벨소리와 성가도 그런대로 멋있게 들린다.
커다란 노천마켓시장을 실컷 구경하고 계단이 끝없는 교회에서 나오는 남자끼리의 결혼커플에게도 찜찜하지만 앞으로도 쭈욱 잘 살기를 축복해주고 스웨덴으로 가는 크루즈 배를 탔다.
타이타닉보다 크다는 12층 높이의 실야라인 유람선 크루즈에는 면세점, 카지노, 노래방, 유명브랜드 상점, 온갖 해산물이 가득한 맛있는 부페식당에서 술 좋아하는 남자들은 맥주를 원없이 먹고 마신다. 배안 면세마켓에서 아는 이들에게 줄 자이리톨을 종류대로 바구니에 담았다. 쿨쿨 잘자는 남편을 밤새워 지키며 13시간을 달려 선상뷔페로 아침을 먹고나니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도착한다. <다음에 계속>
<
글, 사진/ 박명희(워싱턴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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