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또 한 번 엘살바도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 올랐다. 벌써 4번째. 한국에 남아서 SAT를 공부하겠다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던지라 조금은 퉁명스러운 표정과 12학년인데 일분일초가 아깝지 않겠냐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으로 몸을 실었던 나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이건 핑계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과 좋은 장소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한국을 떠나기 싫었던 것이 큰 이유이다. 약 5시간의 비행, 그리고 공항에 발을 디디면 이제는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풍경을 보며 언제나와 같은 숙소로 향한다. 약 이틀의 휴식이라면 휴식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후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다.
미국에서의 나라면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을 시간에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한다. 현장에 가면 모두 익숙한 듯이 장갑을 끼고 할 일을 찾아 나선다. 다들 반쯤은 감은 눈이지만 일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모습들이 정말 예쁘다.
예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다. 대게 첫째 날은 정신없이 지나가고 둘째 날부터 몸은 힘들어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내가 맡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고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넘어간 후이다.
문득 일을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있나? 게으른 내가 왜 자꾸 어떤 일을 끝내자 마자 쉴 생각보다 다른 일을 빨리 찾을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질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어느정도 그 대답을 찾았다. 내 마음 속 어떠한 불편함이 그 이유이다. 내가 맡은 특정한 임무를 다 수행하지 못한다는 불안함이 내 마음 속에 무의식적으로 커지고 커져 불편함을 만들고 그 불편함이 나를 끊임없이 여러가지 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가 이러한 불편함을 미국에서나 혹은 한국에서나 느낀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거의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엘살바도르 여행에서 맡은 임무가 ‘일 하는 사람’ 또는 ‘일을 돕는 사람’ 이라면 나의 미국에서의 임무는 ‘학생’이다. 하지만 내가 학생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왜 일까.
반복되는 시험과 숙제들이 나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학생으로서 배워야 한다는 책임감의 의미가 흐려져서 그런 것 같다.
또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그 목적을 잃은 것도 있다. 엘살바도르에서 하는 일들은 일정이 짜여져 있어 언제 이 일들이 끝날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공부는 아무리 해도해도 어떠한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거 같다. 내가 이일을 하면서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 얻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의 의지를 깎아 내렸다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떠한 대학을 가고 어떠한 전공을 선택하며 어떠한 인생을 살지 나를 포함해서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 의미를 모르겠다면 일단은 지금 당장에 주어진 임무에 책임감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미팅 중 해 주신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조금씩 해 나가다 보면 어떤 미래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나에게 책임감을 다하는 일에 대한 벽이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의 학생이라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조금은 불편함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올해의 여행은 나에게 여러 의미로 아주 특별했다. 매년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에는 이 여행이 너무 감사하고 떠나는 길이 참 아쉽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버지께서 나를 이 여행에 4년 내내 보내셨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나의 대학 입시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며 보내셨다. 하지만 이 여행은 나에게 그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이 끝날 때 쯤에 나는 무서웠다. 나의 12년 의무교육의 마감표를 찍는 해가 올해이다.
내년에는 나의 대학 입시가 모두 끝나 있을텐데 이제는 나의 삶의 일부가 된 이 여행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까봐 너무 두려웠다. 아마 나는 내년 여름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이 여행에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내가 스스로 번 돈으로 다시 돌아온 여행은 나에게 더 큰 의미와 느낀점을 주지 않을까? 내가 이 여행에서 느낀 모든 것과 마지막에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던 나의 학생의 얼굴을 일년 동안 간직하며 지금 이 다짐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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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주 West Springfield High Shool(12th G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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