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중도파 인사들이 “이제야말로 도널드 트럼프가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며 마지막으로 추켜세운 적이 언제였나? (주로 그가 누군가를 박살냈거나, 뭐 그런 비슷한 일을 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내 생각에 족히 1년은 넘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전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이 판세를 뒤엎을 결정적 변수로 떠오르자 일부 유력인사들은 트럼프에 대해 속속들이 끔찍한 인간이라거나 국가에 해를 끼칠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들의 경고를 흘려버린 채 트럼프에 대해 숙련된 기계적 공정주의(bothsidesism)로 응수한다. 한마디로 트럼프나 힐러리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몇 주간의 진짜 뉴스는 트럼프가 무솔리니의 짝퉁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부패와 폭력선동, 직위를 이용해 비판론자들을 제재하는 권력남용 행위 등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이 면죄부를 제공하거나 오히려 응원하는 가시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 진짜 뉴스다.
오판하지 말라.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연방의회의 상하 양원을 재 장악하면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다면 트럼프는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가며 거짓 혐의를 만들어 정적과 언론인들을 구금하고, IRS와 같은 국가기관을 사유화하는 등 완전한 독재자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공화당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사실상의 독재정치인 ‘트럼포크러시’(Trumpocracy)라는 말인가?
공화당내 일부에서 트럼포크러시 같은 정치체제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몰락이 부유층 감세와 대기오염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름끼치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추측컨대 대다수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사악하다기보다는 줏대가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신 없이 사악하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념적 지도자(ideologue)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당의 노선을 따라가는 보신주의자다.
그리고 이런 보신 본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더욱 깊숙이 공모의 늪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쁜 지도자를 한번 돕게 되면 다음에 그가 저지른 심각한 잘못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
백악관 입성 직후 트럼프가 명령한 무슬림 여행금지령과 언론에 가한 공격을 두둔하고 러시아와의 유착 증거를 외면하면서 공화당은 그들의 퇴로를 스스로 막아버렸다.
사실 현시점에서 그들이 조롱하던 진보적 엘리트들이 옳았고 자신들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당혹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일단 잘못을 인정하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공화당의 판단이나 애국심을 믿는 사람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최소 저항’의 길을 택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타락에 동조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착증거 없음”(No evidence of collusion)이 “유착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Collusion is no big deal)로 바뀌고, 거기서 다시 “유착은 기막히게 좋다”(Collusion is awesome)로 변화하면서 러시아 내통의혹과 관련해 트럼프를 비난한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국장을 감옥으로 보내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만 보아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어느 정도까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약점의 표출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공화당은 지도자 숭배에 취약한 독특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공화당은 불편한 사실을 부정하고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오랜 버릇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란 전체 과학계가 작당한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주장에서 트럼프가 불순세력의 표적이라는 음모론으로 건너뛰기를 하는 것은 그리 큰 비약이 아니다.
현대판 공화당 정치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관원들이다: 그들은 반대를 허용하지 않고 충직한 조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단일체 운동의 산물이다.
설사 그들에게 유리하게 책정된 선거구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한 폭스뉴스의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당이 운영하는 싱크탱크의 연구원으로 임명된다.
심지어 지금도 대다수의 정치 평론가들은 정치권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바로 몇 달 뒤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만일 상황이 달라져 공화당이 의회 재 장악에 실패하고 트럼프가 2021년 1월 혹은 그 이전에 대통령의 직위를 잃는다면 트럼프가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 추켜올리던 인사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공화당 정치인들을 정책에 진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존경할만한 사람들로 둔갑시킬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공화당은 결코 신중한 정책정당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 우리는 실시간으로 공화당이 어떤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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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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