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은 관내 학교들과 교육청 내의 여러 부서 대표자들을 대상으로 ‘형평성(Equity)’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학교 교육에 있어서 형평성이 결코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학군 내에서 그 중요성이 좀 더 강조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 기회와 성취도 부분 모두에서 인종, 경제적 능력, 그리고 특수 교육이나 ESOL 교육 여하에 따라 뚜렷한 격차가 있고, 그 격차 해소 노력의 결과도 그 동안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날 심포지엄의 기조 연설자는 흑인이었는데 로스엔젤레스(LA)에서 교사로 시작해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1992년 LA에서 일어 났던 한 사건이 자신이 사회를 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큰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에게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머리를 바로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 기조 연설자와 내가 생각하는 사건이 아마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LA에서 1992년에 일어 났던 사건이라면 나에게는 한인타운에서의 폭동이 우선적으로 다가 온다. 그런데 심포지엄에서의 기조연설자는 아마 한인타운 폭동 보다는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경찰들의 폭행사건 재판 결과를 생각했을 것이다. 기소되었던 백인 경찰들에 대해 단 한 명의 흑인도 포함되지 않았던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 손을 들었던 청중 대부분도 그 무죄 평결을 생각하고 있었을것이다. 물론 무죄 평결 후 폭동이 일어났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주는 사건이다.
LA 폭동에서 경찰은 이민 초기 한인들의 생업 터전 보다 미국의 최고 부자들이 산다는 베벌리힐스의 방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26년이 지난 오늘날 그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 당시 LA 경찰국의 결정은 공권력 사용에 있어 대상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형평성을 잃었던 전형적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자는 청중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형평성 상실을 경험한 적이 언제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옆 사람과 나눠 보라고 했다. 나는 동료 교육위원과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 때 홍수로 인해 겪었던 경험을 나누었다.
1971년에 나는 구로공단 바로 옆의 빈민촌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대표적으로 가난한 동네였다. 구로동은 여름에 비가 오면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길바닥은 금새 흙탕물로 질어졌다. 그 동네의 뒤를 도림천이 지나갔다. 도림천 건너편은 도림동이었다. 도림천 양 쪽에 뚝이 있었다. 지금은 1971년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으나 비가 많이 와서 도림천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던 적이 있었다. 곧 범람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는 도림천 뚝의 한 쪽을 뚫어 물을 빼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구로동과 도림동 양 쪽에 세워진 뚝 중에서 어느 쪽을 뚫느냐를 결정해야 했고, 그 결정은 뚝 양 쪽 동네를 비교해 재산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적은 쪽으로 났다. 더 가난한 구로동이 선택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뚝을 뚫기 단 몇 시간 전에서야 통고를 받고 우리 집은 서둘러 피난을 가야 했다. LA 한인타운과 베벌리힐스 사이에서 부촌이었던 베벌리힐스를 보호하기로 결정한 LA 경찰국의 결정 배경과 별반 차이 없는 논리에 우리집이 물난리를 겪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1년의 홍수와 1992년의 LA 폭동을 기억하면서 형평성 원칙 적용에 있어 집단적 이기의 역할에 대한 물음이 찾아 든다. 집단적 이기가 개인적 형평성 보다 우선 해야 하나. 그래서 베벌리힐스 보호가 LA 전체의 집단적 이기 계산 차원에서 더 중요했나. 도림동과 구로동 사이에서 더 가난한 구로동을 희생 시켰던 1971년의 서울시 결정도 집단적 이기 우선 원칙에 준한 적절한 결정으로 정당화 될 수 있나. 집단적 이기 앞에 개인적 형평성은 설 자리가 없나. 그렇다면 공교육에서도 개인적 형평성 보다 집단적 이기가 우선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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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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