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표하는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을 위한 변호사’라는 비영리 단체는 하버드를 상대로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의 인종에 따라 더 높은 학업성적 기준을 정하고, 아시아계 학생 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하버드의 현행 입학정책이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사건은 보스턴 소재 연방법원에서 심리중 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7년 8월 입학 관행에서 의도적 인종차별이 있는지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 소송과는 별도로 인권위 자체 조사에서 의도적인 인종 할당제 혐의가 드러나면 5억 달러 연방 기금 지원을 삭감하거나 중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원고인 이 단체는 하버드 입학정책에 도전하고 있지만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빅 3‘ 대학을 포함한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대학들은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버티며 ‘돈 쓰는 고객’(paying customers)을 입학시키기 위해 ‘연막심사’(smokescreen) 입학 관행을 100년이 다 되도록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의 입학정책이 공정한가 이다. 납득하기 어렵고 분명하지 않는 입학기준, 불법적 쿼터제와 유사한 은밀한 인종적 고려 할당제, 체육 특기자와 동문자녀에 대한 지나친 특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지도층 자녀들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정책, 저소득 계층과 노동 계층 자녀들에 대한 의도적 배제정책, 대학의 이해관계자들 40명으로 채워진 최종 입학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입학위원회’의 독점운영권 등 대학의 이익만을 위한 현행 입학정책이 입학기준의 공정성과 입학절차의 투명성, 더 나아가 기회균등과 평등성 등 공동선의 가치들을 훼손하도록, 연방대법원에서 합법적으로 세탁되어졌다고 해서,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점 일 것이다.
분쟁의 이면에는 두 가지 팩트가 존재한다. 하나는, 지원자의 저수지에 너무 일급수의 물고기가 많다는게 문제이다. 매년 약 4만명의 학생들이 하버드에 지원하고 있다.
학업성취가 입학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라 할지라도 고만 고만한 성적을 가진 학생이 너무 많아 이들 모두를 다 수용할 수 없다는데 대학의 고충이 있다. 또 하나는, 하버드 같은 엘리트 기관에서는 어떤 사회적 배경과 어떤 유형의 인성과 자질을 갖춘 학생이 사회지도층이 될 확률이 높은가에 대한 연구자료를 비밀리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목적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실력보다는 무형의 자질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형의 자질을 입학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 원인에 관한 이론을 반영한 것이며, 모호한 기준에 차별행위를 숨기기 위한 것이며, 바람직스럽지 못한 학생 배경을 배제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적·사회적·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대학의 자유 재량권에 해당된다. 외부의 영향력과 간섭으로부터 대학은 자유로워져야 한다. 누군가를 입학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대학이 결정할 문제이다.
미국 사립대학들이 명문 사학으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율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별당한 인종을 우선 배려하는 것이 먼저이다. 인종을 고려한 암묵적 할당을 인종차별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1,000년 전 송(宋) 왕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었다. 300년 전 청나라(淸)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평등국가였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아시아에 대한 서방의 우위가 뒤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순수한 서구 패러다임인 뉴턴의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과학적 기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독창성과 창의성에 기인한다. 암기에 초점을 둔 아시안 학생을 비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이다. 정확한 답이 항상 존재하고 책이나 권위에서 발견되는 것은 동양정신에 뿌리박혀 있다.
아시아인들이 배우는 것은 시험에 합격하여 좋은 직장과 높은 보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사익에 몰두하고 공익에는 관심이 없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온 유교철학은 아시아인의 창조적인 생각을 함몰시키는데 지긋지긋한 역할을 해왔다. 중요한 지식의 발전은 기존의 틀을 상당부분 수정하거나 거부하는 것 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바꾸는데는 몇 가지 강력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대학은 물을 수 있다. “동양인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이 논쟁의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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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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