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7월까지 살인사건이 90건이 넘는 워싱턴DC의 참담한 통계 가운데서도 7월 16일 황혼이 짙어지기도 전인 오후 8시에 DC 북동부 흑인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은 특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열 살짜리 소녀 마키아 윌슨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자기집 부근에 세워져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에 다가가다가 복면을 쓴 네 명이 쏘아대는 70발의 총탄 중 하나에 희생됐기 때문이다. 훔친 차를 타고 와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범인들은 두 주가 넘도록 체포되지 않고 있어 가족들과 이웃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또 워싱턴포스트에서 마키아의 사진이 곁들인 사설로 백인이 희생자인 살인사건의 범인은 69%가 체포되지만 희생자가 흑인인 경우 56%만 체포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연방헌법 수정 제2조의 무기 소유권리가 주의 안녕을 위한 민병대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무기 소유권이라는 5대 4의 연방대법원 판례가 국법이 된 2008년 이래 전국총기협회(NRA)와 총기 애호자들의 총기 우상숭배는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 샌디 훅스 초등학교의 5, 6세 아이들 20명이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학교에 난입해 반자동소총을 휘두른 20세 정신병자에게 6명의 교직원과 함께 무참히 살해된 2012년 이래 비슷한 사건들이 빈번해도 총기규제는 탁상공론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그래도 주나 시에 따라 적어도 정신병자들이나 전과자들은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곳들이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이 사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8월 1일자로 총기를 소유한 개인들이나 가정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주먹다짐으로 끝날 수 있는 많은 분규들이 피 흘림으로 끝나버린다는 이야기다.
얼마전 한인교수 부부의 타살과 자살도 권총이 집에 있었거나 쉽사리 구입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비극일 것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의 분규가 말다툼이 아니라 피 흘림으로 끝나는 심각한 사건들도 역시 총기 소유가 맥주구입보다 손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8월 1일자로 더 큰일 날 뻔한 것이 뉴욕 소재 연방지방법원의 임시 명령으로 잠시 주춤해졌다. 바로 그날 코디 윌슨이라는 무정부주의자는 자기가 판권을 가지고 있는 총을 집에서 찍어낼 수 있는 컴퓨터 파일을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만약 8개주와 워싱턴 DC의 검찰총장들의 긴급 청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코디의 단체가 그것을 인터넷에 띄웠을 것이고 3D 프린터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AR-15 반자동 소총 등 총기를 찍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한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내 손으로 총을 집에서 만들 수 있게 되면 중범죄자들이나 정신병자들이 총을 못 사도록 요구되는 배경조사가 무의미해진다. 정부가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믿는 윌슨이 2005년에 처음으로 무기 제조법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했을 때 미 국무부는 군에 관한 기술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라고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국무성에 대한 고소사건을 진행시켜온 윌슨이 여러 절차에서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성은 그와 타협을 보아 그가 8월 1일을 발표로 잡았다는 게 사설 내용이었다. 민주당 여러 상원의원들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윌슨의 조직과의 합의를 재고하도록 촉구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NRA 쪽에서는 3D 프린팅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들이 추적불가능하다는 총기 단속 주창자들의 주장이 과장이라고 반박한다. 많은 분야에 있어서 DIY(Do It Yourself)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자동차 엔진을 집에서 조립해서 만드는 취미 활동인들과 총기 제조자들 사이에 별차이가 없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소형 자가용 비행기의 부품들을 사서 조립하는 DIY 애호가들과 총기복제 주창자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자동차, 보트, 경비행기 등의 DIY 주창자들의 완성제품이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는데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부인과의 다툼, 이웃과의 분규, 직장생활에서의 불만, 심지어는 대로상에서 자동차로 주행 중 발생하는 도로 운전자들간의 격분이 피 흘림의 비극으로 가는 데는 거의 틀림없이 무기의 범람이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미국의 많은 부조리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총기 범람이다. NRA의 로비와 총기 숭배자들이 연방의회와 주의회들을 주무르는 현상이 계속되는 한 개인들의 총기 남용에서 오는 가정들과 개인들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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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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