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실제의 일을 고려하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며 여러 가지로 주장하는 것을 관념이라 한다. 그럼 지각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런 물음은 철학의 시작과 함께 계속적으로 사유(思惟)되어 왔던 문제들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지각을 단순 감각 경험으로 보았고 어떤 철학자들은 합리적인 이성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루 하루 축적되어 가는 경험 속에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믿고, 추종하는 것이 경험이다. 철학에서 경험론이란 감각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증거들로 부터 비롯된 지식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경험론에서는 관념의 형성 과정에서 경험과 증거, 특히 감각에 의한 지각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한 순간 어떤 상황에 따라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있다. 경험만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경험의 가장 큰 문제는 위험의 시그널을 감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정관념은 현실 안주에 빠질 위험성이 많으며 현실에 안주하다 보면 변화를 원치 않게된다. 변화를 거부하면 도태만 있을 뿐이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업무에서 보듯, 상사는 “…해라” 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며 부하직원은 “…해야 한다” 하는 의무만이 있다.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자율권이 보장 된다는 것이며, 의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자율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한과 의무의 상호관계에서는 위계질서와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어 돌아간다.
그런데 여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위계질서는 경험(carrier)에 의해 서열이 구분되어지고 시스템은 과학적 사고(scientific thinking)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주종 관계가 명확하고 업무가 조직화되어 있어 어찌보면 효율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야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어 달리 보면 창의성과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간은 고정된 사고로 정체되어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유동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속성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간섭을 받거나 관리대상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로 신에게 이미 답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특징이다.
동양은 도덕·철학 등 인문학적 사고가 특징이다. 공자는 어질고(仁)·옳고(義)·예의바르고(禮)·지혜로운 것(智)은 사람의 본성이라 했다. 그의 제자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고, 누구나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이며 항상 욕망에 의해서 쟁란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보았다.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담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것이 바로 인간 본성 문제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를 뒷받침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등식화하고, 그것이 인류가 도달하였고 앞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회제도의 최고 형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인간 본성 위에 구축하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기적 인간 본성은 근대사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본 논리이고, 자본의 자기 증식 논리이고, 자본 축적 논리이다.
이익을 기초로 한 협상은 언제나 조건적이다.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원칙이 지켜진다면 공정이라 정의라 말할 수 있다. 정의는 결과가 아닌 원칙의 문제이며 자유의 영역이 아닌 평등의 영역이다. 또한, 올바른 분배는 올바른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면 계산에만 밝은 사람이 되게 할 뿐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정관념은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누군가를 내세워 살아온 인류의 역사는 항상 불행했다. 앞으로의 사회는 누구를 위한 대표가 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누군가의 권력과 금권에 의해 또 다른 누군가에 종속되는 사회보다는 이성을 통해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자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자유의지’대로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제도만이 사회적 동물이 추구하는 올바른 사회 방향이다. 인문학적 사회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회 제도이다. 창의적인 사고란 자유의지에서 출발한다. 서양은 수학·공학 등 과학적 사고가 특징이다. 서양인의 합리적인 사고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 공학적인 사고만이 그들을 지배할 뿐 인문학적 배려가 인색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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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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