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이 예선을 마치고 16강에 돌입한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베이스캠프가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풍경을 소개한다.
살면서 여행하고 싶은 나라와 도시 목록에 러시아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없었다. 출발 전 인터넷을 뒤지고, 서점에서 책을 찾아봤지만 정보는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외계 문자 같은 러시아어 해독의 한계를 원인으로 추측했다. 몇몇 블로거의 여행 무용담을 조각처럼 모아 대표팀과의 여정을 시작했다.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러시아 전통음식인 샤슬릭(양고기요리)에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테트리스 게임 속에 등장하는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기대감만 간직한 채.
월드컵 기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백야의 한가운데에 있다.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해가 떠 있고, 해가 지더라도 완전히 캄캄해지지 않는다. 도시는 노을과 여명 사이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잠들지 않는 월드컵에 출전한 각국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많은 인파는 밤이 없는 축제를 즐긴다.
월드컵 개최 도시에서는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정해진 장소에서 ‘피파 팬 페스트(FIFA Fan Fest)’가 열린다. 2002 한일 월드컵 거리응원을 기원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공식 팬 페스트가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팬 페스트 장소는 냅스키 대로에 위치한 광장이다. 행사장 주변으로 네바강을 따라 건물들이 빈틈없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핀란드만(灣)과 네바강 어귀 늪지 위에 세워진, 표트르 대제의 상상 속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19세기를 지나면서 계획적으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각기 다른 시간 속에 만들어졌지만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한 덩어리처럼 붙어 있는 동시에, 레고 블록처럼 각각이 분리된 공간이다. 견고하고 단단하게 세워진 건물들 사이의 골목은, 테트리스의 긴 막대기를 꽂아 빈틈없이 채워야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은 강박을 부른다.
거대한 담장 같은 냅스키 대로에 모인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은 각자의 팀을 응원하다가도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하며 거리로 흘러 나간다. 비록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는 없었지만, 냅스키 거리에서 스치듯 만난 세계의 축구팬들은 한국에서 온 팬들을 위로해 주었고, 한국의 축구팬들은 기꺼이 상대를 축하해 주었다.
오전 2시 은은한 불빛 속에 네바강의 다리가 하나 둘씩 들리는 모습, 에르미타시 박물관과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차례로 돌아보는 선상 투어, 한 손에 와인을 들고 담요를 두른 채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옥상시네마’, 마르소보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꽃’, 매일 오후 11시 궁전광장을 출발하는 야간 자전거 투어, 둠스카야 거리의 이 술집 저 술집을 돌아다니는 ‘바(bar) 호핑’ 투어 등 잠들지 않는 도시의 수많은 즐거움이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는 7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l 여 l 행 l 수 l 첩 l
●러시아에서는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거리 간판과 식당 메뉴도 영어로 된 것이 거의 없다. 대신 휴대폰으로 구글 번역 앱과 지도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체류 기간 동안 가장 잘한 것은 현지 유심(Usim)을 구입한 것이었다. 5,000~1만원 정도면 통신사 영업소에서 2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12기가 데이터 유심을 구입할 수 있다.
●얀덱스(Yandex)와 막심(Maxim) 앱을 설치하면 택시도 편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두 앱 모두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현지 유심으로만 가능하다. 앱에서 목적지와 가격을 정하고 주변의 택시를 탐색해 부르면 일반 자가용이 온다. 우버나 한국의 카카오블랙과 비슷한 방식이다. 한적한 시간대라면 2,000~5,000원 정도로 시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밤이 없다. 도시 전체가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올해만 그런 건 아니다. 북위 60도, 북극의 도시는 실제 오후 10시가 넘어도 어두워지지 않고 박명(薄明)으로 밤을 지샌다. 백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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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류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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