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있다 늘 자기를 따라다니는 자신의 그림자를 극도로 두려워하여 몸으로부터 그림자를 떼어 놓으려 온갖 방법을 다 구사한다. 나중에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서 그림자가 생겨난다고 여긴 나머지 그 둘을 완벽하게 떨쳐 버리기로 사내는 마침내 결심하게 된다. 우선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으로 그것들로부터의 도주였다.
그리하여 그는 무작정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 만큼의 새로운 발자국 소리만 늘어나고, 발자국 소리가 있는 한 그의 그림자 역시 크기만 달라질 뿐 사라지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 이었다. 너무도 악착같이 심지어 물위에서도 그림자는 잘도 따라만 다녔다. 그는 이 모든 현상이 아직 자기의 달리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지 않기 때문이라 여겨 더욱 더 분발하여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간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여전히 발자국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발자국 소리가 있는 한 그림자만 없어질 리 또한 없어 끝내는 달리고 달리다 힘에 지쳐 그만 탈진해 쓰러져 죽고 만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만일 그가 단순히 그늘 속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기만 했더라도… 분명 그 끈질긴 그림자는 쉬 사라졌을 것인데… 아니 힘들고 지쳐 체념하듯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텐데… 나아가 만약 이웃과 소통할 수 있어 누구든 실물이 있는 한 하늘 아래 예외없이 모두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알기만 했어도….
2500년전 장자의 잡편 31편에 나오는 그림자 우화이다.
알람소리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며 양치하고 우유탄 씨리얼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신호대기 중에 화장을 하며 도착한 직장,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밥 때가 되어있어, 떠밀리 듯 한술 뜨고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일정이 빼곡하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장한 내일을 다짐하며 휴식도 잠시, 알람이 울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오늘은 트래픽이 좀 덜하다 싶어 헤아려보면 바로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이다 .
말장난 같지만, 인류를 ‘human doing’이라 하지 않고 ‘human being’ 이라고 하는 이유를 새겨볼 만하다. 어리석음을 빠져 나오려면 더러 아프기도 하고 달음박질도 멈추고 밖의 풍경도 봐야 한다. 그늘에 누워 하늘도 올려다봐야 떠가는 뭉게구름도 보게 되는 법, 풍선을 매단 상상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에 걸맞는 딴 짓거리도 하게 된다. 삶의 관성과 일상도 한번쯤 의심하며 그래야 자기가 처한 상황도 보게끔 되어있는 것이 또한 세상의 이치다. 그저 극성으로 열심히만 산다고 해서 최상이며 최선이 아닐 터, “멍청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라는 요즘의 유행어처럼 흐름에서 벗어나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다.
어렸을 적 학교가 파하고 나면 때로는 마음 졸이며 공동묘지를 돌아, 가보지 못한 마을 속 동무의 집도 들러 저녁을 얻어먹고 집에 간 추억, 물론 엄마에게 이른바 <길치기>를 했다고 핀잔을 듣기 십상이었지만, 역시 내게는 모범한 학습을 넘어 결석이나 조퇴만큼 두고두고 소중한 얘깃거리가 되었다.
훌륭한 사람이 무슨 직업인줄 알았던 시절, 준혜엄마로 불리던 엄마와 준혜 아버지로 불리던 아버지가 따로이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도 그럴것이 동생들도 모두 준혜네 동생으로 불리는 건 물론이요, 심지어 다니던 학교마저 준혜네 학교로 불려지는 동네에서 자라, 한때나마 나는 모든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 부끄러운 착각을 멈춘 것도 알고 보면 그런 일탈에 의한 깨달음에 의지한 바가 크다.
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을 헤맨 후 집에 돌아와 느낀 아득한 저쪽 너머의 세계관을 가늠하고 돌연히 이는 슬픔의 정조와, 방학 때 머문 큰집에서 사촌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또 다른 확장된 세상을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건 아마도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보는 객관화의 일종이었겠지만 어린 내가 흐름 속에서 빠져나와 기특하게도 세계와 인간을 매개로, 자신을 보는 안목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닐런지…..
귀밑머리 허연 나이가 되어 또 다시 자문해 본다. 우매와 미욱한 자기 확신 속에 아직도 스스로의 그림자를 떼어놓기 위해 쉼 없이 내닫는, 그런 낭비된 열정은 행여 내게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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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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