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뉴스에 자주 나와서 ‘CVID’가 무슨 뜻인지 찾아봤다.
C(완전하고 Complete) V(검증가능하고 Verifiable) I(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D(파괴 Dismantlement),
영어조차 어눌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5년 전인 2003년에 북한 핵에 대한 미국 나름의 기준으로 정해놓은 데서 유래된 ‘용어’라고 한다. 그는 2002년 취임하자마자 전 세계를 향해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이른 바 ‘3대 악의 축’이라고 선포해 버린다. 그리고 취임 1년도 되지 않아서 본토이자 미국의 심장이라고 하는 뉴욕 무역센터에 테러가 났다.
얼마전 싱가포르에서 적대관계 70년 만에 북한의 지도자를 만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회견 말미에 ‘군사적 옵션은 없느냐?’고 물으니, ‘뉴욕에는 800만이 살고 있다. 한국의 접경지대에는 2,8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미국에 ‘한국전문가’라고 하면서 그걸로 밥 먹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모른다. 트럼프의 이 한마디가 그들의 필생의 직업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트럼프는 말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해온 ‘워 게임’(war game·전쟁연습)을 중단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막대한 자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돈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고, 생명의 관점이면 어쩌랴,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청와대는 즉각 ‘상황 변화는 없다’고 발표한다. 지극히 관념적 대응이었다. 다음날 열리는 지방선거를 너무 의식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사안을 놓고 벌어질 한반도 통일 반대세력들의 반응을 지레 겁내왔던 발언의 연장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70년 만에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본질과 역사적 의미는 국내언론에서는 사라져버렸다.
소위 ‘주요 언론’이라고 하는 한국의 신문들의 1면 기사제목들을 보자. 동아일보 ‘한미연합훈련중단’ 시민들 패닉, 주한미군철수 시간문제, 중앙 ‘한미훈련 중단하겠다’ 폭탄선언, 조선, 연합훈련중단 ‘안보쇼크’ 일파만파,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저주하는데 즐겨 사용하는 말들의 성찬이다. ’패닉, 폭탄, 쇼크’ 안 그래도 작은 반도 땅, 그것도 갈라진 지 70여년 만에 그토록 증오하던 북미 양국이 한자리에 앉아서 악수하고, 밥 먹고, 대화했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을 아직도 모르나 보다. 문재인대통령은 ‘뜨거운 마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축하 한다’고 아주 짧게 말했다.
우애 있는 형제가 한집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당 한가운데 담장이 생겨버리더니 각자 자기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패거리지어서 동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 삿대질하고 오물 집어던지고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지 말자고 한두 번 만나보기도 했지만 그 동안의 앙금이 너무나 깊기도 했고, 주변에서는 ‘언제는 원수야 악수야 하더니’ 저러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갸우뚱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담장 한쪽에 대해서 극악무도하고, 집안 어딘가에 번쩍거리는 과도를 숨겨 놓고 있어서 할 수만 있다면 그 집을 폭파시켜 없애버려야 동네가 평화롭다고 사방팔방에 나발을 불고 당장이라도 폭파하겠다고 달려들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안 죽으려면 고슴도치처럼 담장에 철조망도 더 높이고 언제 죽이려 할지 모르는 것을 대비라도 해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제발 우리도 동네에서 같이 살아가게만 해 달라. 칼도 버리고, 숫돌도 버리고, 풀무도 버리겠다’하고는 겨우 겨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한마디로 “못 믿겠다‘와 믿어보자”로 갈려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리 믿어보라고 말과 행동으로 하나하나 의심을 풀어나가려 하지만 도무지 못 믿겠다는 데에는 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다. ‘병중에 병이요, 불치병중의 불치병이 의심증이다’ 의처증, 의부증은 한마디로 치료가 불가능한 고질병이다. 한쪽이 죽어 세상에 없어져 버려야 비로소 해결된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신뢰’라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왜 칼을 갈고, 숨기고 있었느냐? 그렇게 만들었던 원인, 상황, 주체들은 자각과 반성은 커녕 이제 새로 ‘CVID’라는 걸 들고 나온다. 북한이라는 땅을 사람이 살지 못하게 만들어버리지 않는 한 지켜낼 수 없는 ‘조건 아닌 조건’이다. 이게 회담성명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트럼프, 김정은의 북미회담을 ‘형편없는 것’으로 폄훼하기에 경쟁적으로 바쁘다.
북미회담에 적시된 ‘완전한 비핵화’, 사실 이 마저도 믿음의 한계가 없어 보인다. 현재 전 세계에는 14,550개의 핵탄두가 있다고 한다. 어떤 건 믿고, 북한은 못 믿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세상에 ‘완전한’게 과연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단어 ‘CVID’라는 황당한 자구 하나에 민족의 장래를 망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담장을 허물지는 못할지라도 동네사방에 동태형제를 향해서 ‘믿을 놈 절대로 아니다’ 꼭 이렇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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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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