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묵의 중국기행 2 청의 발상지 심양(瀋陽)을 가다
-서울역 닮은 심양역
단동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심양으로 왔다. 심양 역 건물(오른쪽)이 일제시대 건물로 모양이 서울역과 똑 같다. 두 군데 다 뒤쪽에 증축한 것까지도 닮았다. 다만 심양이 좀 더 크다.
일제시대에는 봉천으로 불리기도 했고, 만주국의 최초 봉천군관학교가 있어 한국 출신의 일본군 장교들을 배출되었는가 하면 많은 조선족이 모여 항일투쟁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조선족이 9만 명이나 되며 조선족 말로 가리키는 중학교가 2개, 소학교가 5개나 있다고 한다.
심양은 인구가 776만, 중공업, 군수공업으로 동북삼성에서 제일 큰 도시이자 장개석의 국민당과의 내전 당시부터 러시아의 힘을 업은 공산당의 본거지이었다. 그리고 청조 말기부터 원 세계 치하에서는 군벌 장작림과 그의 아들 장세량이 지배하다가, 일본 관동군 침략 후 괴뢰정부 만주국의 지배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 곳이다.
그러나 나의 최대의 관심은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 그리고 병자호란 때에 인조로부터 남한산성 앞에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받아낸 2대 홍타이지, 이 2대에 걸친 건국의 발상지이자 수도인 이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라마불교 사원과 서탑
제일 먼저 찾아본 골이 서탑(西塔, 왼쪽)이었다. 한양에는 동서남북 4개 대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동서남북 4곳에 라마 불교 사원을 지었고 탑을 세웠다.
청나라는 건국 시 몽고인과 정략결혼을 통한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몽고인들은 원나라 이전 때부터 라마교를 택했는지라 청나라 또한 라마불교 국가이었다.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에서 선황제의 임종 때에 라마교 승들의 염불하는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 서탑 불당은 홍의병 난리 때에도 피해가 없었지만 오래되어 근래에 보수했다고 한다. 좀 특이한 것은 대웅전 본당에 모신 것이 부처님이 아니라 관음보살상이다.
이 박물관이 대만과 교류본부, 장학량 옛 저택, 장씨 군사 본부(장작림, 장학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아랫줄 왼쪽). 군사 수뇌부 입구에 관운장 그림(아랫줄 오른쪽).
-코리아타운과 안마
서탑에서 나와 바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소위 서탑거리로 갔다. 소위 코리아 타운으로 알려진 곳이다. 북한이 운영하는 평양관, 모란관이 있는가 하면, 청담동 고기집, 현풍할매 곰탕집 간판도 보인다(사진 위). 식당, 기념품가게부터 구석에 재래시장까지 꽤나 큰 규모의 코리아타운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인근 조선족 소학교, 중학교를 보기도 하고 조선족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보다가 안마를 즐겼다. 약 20달러 비용으로 즐긴 90분 전신 안마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달려가 안마를 받고 싶을 정도로 정말 최상의 안마이었다.
다음날부터 장학량 기념관, 2대 홍타이지(순덕제)의 능, 9.18 기념관, 고궁(Mukden Palace) 을 중심으로 나의 기행이 시작되었다.
-장학량 기념관
중국에서 TV를 켜면 5년 전만 해도 장풍이다 어쩐다 하며 하늘을 나는 무협 영화, 그리고 중공군의 활약상이었다. 그런데 이 활약상은 일본군과 싸우는 것과 부패하고 주민을 학대하는 악질적인 군 즉 장개석 군과의 전투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장개석 국민당 군의 악행이나 바보 같은 이야기가 없어지고 장개석 군대도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것으로 TV나 영화의 줄거리가 되고 있다. 그 맥락이었는지 아니면 그가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공합작을 강요했던 소위 서안사건의 주인공 때문이었는지 기념관 입구에 장작림 군 본부, 장학량 저택, 중국 대만 우호본부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그리고 장학량을 매우 우호적, 애국자로서의 관점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중공군 참전군인과
흥미로웠던 일화 하나.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린 소녀가 부축해서 구경하고 있었다. 문득 중공군 출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중공군 출신이냐 하며 말을 건넸다. 손녀딸이 조금 의사소통이 됐다.
1953년 6.25전쟁 휴전 협정 직전 서로 땅 한 치를 두고 산이 민둥산이 되도록 치열했던 전투에 참전 했다고 했다. 내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며 마치 옛 전우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때 적국이고 공산오랑캐라고 부르던 그와 사진을 찍자하다니. 글쎄 당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자 했는지 지금 와서 나 스스로 설명을 못 하겠다.
사진 왼쪽부터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과 필자(오른쪽). 인조를 삼전도에서 굴욕을 준 홍타이지가 앉았던 용상이다.
-초원 텐트 모양의 고궁
만주어로 심양을 ‘Mukden’이라 불렀다. 그래서 정식으로는 ‘Mukden Palace’이다. 후금 2 대 홍타이지(숭덕제)까지 수도이었고 그 후 북경으로 옮겼으나 이곳을 별궁으로 유지하였다. 크기는 자금성의 1/12 정도이라고 한다.
이 고궁은 3 개의 나누어진 개념인데 하나가 누르하치 1대 후금의 궁, 2대 홍타이지 궁, 그리고 박물관처럼 문서 등을 보관한 곳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북경의 자금성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궁 건물 등은 볼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누르하치의 황비들이 모두 몽고의 공주이었다는 설명과, 초창기에 몇 개의 군의 깃발에서 후금의 출발을 알리는 것, 그리고 유목민으로 초원의 텐트의 모습을 딴 궁궐 건축 모습이 흥미로웠다.
-홍타이지의 북능
후금(청) 2대 황제 홍타이지 숭덕제 능이다. 한국 역사상 인조에게 삼전도에서 가장 치욕을 안긴 그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역사 기록이 왕을 중심으로 기술된 것이 아쉽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약 800만으로 추정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참전한 후금의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개념으로 포로를 노예로 잡아가게 했다. 결과적으로 노동력이 있는 남자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소위 가임 여성 등 모두 5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가게 됐다.
그 결과 조선의 국가 생산성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나라가 얼마나 피폐 되었나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많은 포로들을 돈을 주고 데리고 왔다. 역사에서 일화로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약 2,000명에 불과하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고 비극이었다.
이제는 중국공산당이 장개석 국민당의 항일전쟁의 공을 인정하는 듯하다(왼쪽위). 소위 서안사태를 일으켜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 합작을 시킨 장학량이 괘씸죄로 일생을 장개석의 볼모(?)로 살다가 장개석이 죽은 후 하와이에 가서 크리스챤으로 100세를 넘어 살았다(오른쪽 위). 1931년, 1년 후 푸이가 만주국 황제가 되었다(아랫줄 왼쪽). 9.18 역사박물관에 씌어진 장쩌민 전 주석의 글씨.
왕릉은 본래 하나의 우주공간이다. 그리고 홍살문 즉 입구부터 성역공간까지 거리에서 그 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홍살문에서 능까지 5위안을 주고 셔틀버스를 타고 갈 만큼 꽤나 멀고 길었다. 물론 능 자체도 동산만 하였다. 제 음식을 준비하고, 제를 지내려고 온 황제 가족의 별실, 라마 불교 제단 등 별실들의 규모는 보통이었다. 다만 조선 왕 능의 석물들은 문신, 무신 등의 호위가 주가 되었는데 이곳은 동물이었고 능에 가장 가까운 석물이 낙타, 코끼리 상이었다. 저승이 먼 곳에 있어 이들을 타고 가려는지?
-9.18 역사박물관
일본군이 1931년 9.18일 기습으로 시작된 소위 만주 사변을 기억 하자며 국가에서 만든 역사박물관이다. 건물 구조는 청일전쟁부터, 만주사변, 항일전쟁, 그리고 전범 재판까지 잘 정리된 그리고 꽤나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박물관의 주인공은 사실 장개석 국민당이어야 하고, 모택동 공산당은 보조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과 일본의 소위 대동아 전쟁에서 미국이 큰 덕을 본 것은 장개석 국민당 군이 일본군과 중국 대륙에서 끊임없이 도전을 해와서 그들 모두 80만을 그 넓은 대륙에 붙잡아 두어서이다. 그리고 만일 일본의 항복이 일 년만 늦었더라면 승기를 잡고 군 정비를 할 수 있었고, 그러면 중국에서 승전국은 장개석 군이었고, 나중에 모택동 팔로군에게 내전에 패해서 그리 맥없이 대만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중경(충칭)에 일본 항공기 수백 대의 폭격을 이겨내고 군벌들을 규합하고 뭉쳐서 반격을 막 시작하려는 참에 항복을 하다니 참 애석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료가 없다. 그리고 많은 젊은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남북, 좌파 우파 싸움으로 이런 박물관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쓴 웃음 지으면서 박물관을 나섰다. <다음주에 계속>
<
글·사진/ 이영묵(전 워싱턴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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