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를 기억하는가?
1959년에 처음 발표된 후 1962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리메이크도 나왔지만 신경 쓰지 말자) 이 소설은 중국 공산당이 한국전에서 포로로 잡은 미군을 세뇌시켜 전쟁영웅으로 만든 뒤 미국의 대통령으로 앉히려는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최대 아이러니는 슈퍼 애국자로 행세하며 미국을 배신할 계획을 수립하는 문제의 정치인이 조 매카시(Joe McCarthy) 상원의원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다.
소설은 지금의 상황과도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은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의 유착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다른 유능한 사람이 이미 다루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만추리언 캔디데이트와 대단히 흡사한 느낌을 던지는 트럼프의 국제무역 관련 조치들이다.
한편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대통령은 국가안보의 미명하에 미국의 민주 우방국들을 소외시킬 보호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는 작심이라도 한 듯 외국의 독재국가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는 미국의 진정한 국가안보 보호조치를 차단하려는 듯 보인다. 실로 묘한 행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선 배경부터 살펴보자. 국제무역은 어느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깰 수 없는 다자협상 체제에 의해 다스려진다.
그러나 지난 1947년 (미국의 주도로) 이 같은 시스템이 탄생했을 당시, 기구창설에 앞장선 국가들은 시스템 내부에 정치적 외압을 방출하기 위한 몇 개의 안전판 설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회원국들에게는 수입급증과 같은 제한된 특정 조건 하에 수입관세 부과와 함께 이외의 다른 무역장벽 설정이 허용됐다.
한편 미국은 이 같은 국제 규정과 궤를 같이 하는 국내 무역체제를 구축했다. 미국의 현행 국내 무역체제 아래에서 백악관은 수입이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올 가능성을 조사할 수 있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무역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내가 말했듯 이런 행동을 허용하는 조건은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곤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한 국제규정과 국내법인 아티클 XXI(Article XXI)와 섹션 232(Section 232)는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가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가안보 예외규정이 발동된 예는 극히 드물다. 정확한 이유는 국제규정과 국내법이 허용한 지나친 무제한성 때문이었다.
만약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마구잡이로 애매한 국가안보를 명목삼아 무역협정을 파기할 경우 다른 국가들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고, 결국 전체 교역시스템이 와해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지난 반세기 동안 섹션 232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대통령이 그 어떤 무역 보복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르다. 그는 이미 국가안보 명목으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했으며 자동차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교역대상국들을 협박하고 있다.
수입 자동차가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한다는 아이디어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자동차 공장을 셔먼 탱크 생산공장으로 전환시켰던 제 2차 세계대전을 다시 치르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수입차량들은 거의 대부분 우방국에서 건너온다.
분명히 트럼프의 국가안보조항 발동은 임의적인 행정조치 제한규정을 우회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트럼프가 제안한 자동차 관세는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우방국들의 믿음을 급속히 와해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무역에서 국가안보가 절대 고려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매우 분명한 사례가 있다: 싸구려 스마트폰 제작사인 중국기업 ZTE의 사례다. ZTE는 미국산 하이텍 부품들을 사용하는데 그중 일부는 제재대상국가로의 수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조직적으로 통상금지규정을 어겼고 결국 미 상무부는 해당 부품이 ZTE에 판매되는 것을 금지했다.
여기에 보태 국방부는 ZTE 전화기가 첩보활동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며 미군 기지 안에서의 해당 제품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트럼트는 양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ZTE를 겨냥한 금수조치를 해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가 보아도 나쁜 배우를 도우려는 이상한 결의의 배경이 도대체 무엇일까? 사사로운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일까?
중국은 트럼프가 ZTE 구하기에 나서기 직전, 트럼프와 관련한 인도네시아의 프로젝트에 막대한 액수의 차관을 승인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이방카 트럼프에게 귀중한 트레이드마크도 내주었다. 이쯤 되면 트럼프 매수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트럼프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우리의 대통령을 매수할 수만 있다면 독재자들은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은 법에 의한 통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독재자들을 매수하려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아마도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에게 “승리”라 떠벌릴 만한 무역협상을 원한다면 저자세를 취하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던 이것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만추리언 무역정책을 갖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국가안보 논리를 앞세워 민주 우방국들을 해치는 것은 물론 적대적인 독재국가를 돕기 위해 진짜 국가안보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