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두 고등학교의 ESOL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미국으로 수학여행 차 온 부산국제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헤이필드 중고교를 방문했을 때 합류해 ESOL 수업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에는 애난데일 고등학교 ESOL 학생들이 준비한 글로벌 프로젝트 발표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는 ESOL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전체의 약 15%나 된다. 숫자로 보면 인근의 알링턴 카운티나 알렉산드리아 시 공립학교 학생들 전체 수 보다도 많은 셈이다. 히스패닉 학생들이 가장 많지만, 출신 국가들을 살펴보면 유엔 가입 국가 거의 모두 다 있다. 헤이필드 중고교에서 들어가 보았던 ESOL 클래스에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멕시코를 위시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학생들을 만났다. 애난데일 고등학교에서 수상작으로 선정 발표되었던 6개의 비디오 프로젝트는 도미니칸 공화국, 짐바브웨, 과테말라, 리베리아, 브라질, 베트남 출신 학생들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여러 다른 나라 출신들의 학생들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다니는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들이야 말로 학생들을 글로벌 시민으로 교육시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반면에 이렇게 서로 다른 배경의 학생들과 그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자들 모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첫 해의 일이 하나 생각났다. 나도 당연히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 수업을 들었던 때다. 당시에는 워싱턴 지역에 이민자 학생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ESL 수업 실시 초창기였다. 같이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서로 상당히 친했다. 선생님과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선생님이 여자 분이었는데 명문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의 나이는 지금 생각해 보니 40 정도 되지 않았겠나 싶다.
그런데 어느 주말 토요일에 급우 한 명과 이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생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무슨 선물을 들고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생들에게 평소 자상했던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약속 없이 찾아 갔다. 선생님 집에 도착했는데 미혼이셨던 선생님은 생일 파티 중이었던 같았다. 제법 많은 손님들이 와 있었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 생신을 축하드린다고 말씀 드리고 선물을 건넸다. 그런데 선생님이 고맙다고 하신 후 덧붙여 말씀 하시기를 다음에 올 때는 꼭 미리 연락해 약속을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당황했다. 알겠다고 인사하면서 바로 돌아섰는데 마음 한 구석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일부러 사전에 얘기 없이 찾아 간 것인데, 선생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운전면허 취득 전이어서 오랫동안 걸어서 그 집을 찾아 갔는데 말이다.
선생님과 그에 대해 그 후에 다시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그 당시 선생님도 나의 깜짝 방문이 불쾌하셨던 것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대신 미국 생활을 아직 배워가고 있는 나에게 방문 예절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선생님을 생각하고 찾아갔던 이민자 출신 고등학생 제자에게는 그게 야속한 나무람으로 들렸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런 가르침을 꼭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했던 것일까 하는 물음도 든다. 지난 한 주 동안 만났던 ESOL 학생들을 보면서 그 가운데에서도 나의 고등학교 때의 일과 비슷하게 서로에 대한 선의가 문화적 차이로 오해될 수 있고, 오해가 또 다른 오해로 이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는 가르치는 교육자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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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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