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의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추사 김정희 (1786-1856)는 어렸을 때 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조선의 실학자로 금석학 연구자요 추사체를 만든 서예가이며 문인화의 대가였고 학자였다. 그에 대하여 막연하게 추사체의 창시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차 메릴랜드대학 화학과의 후배교수인 이상복 교수와 어느날 점심을 같이 하던중 얼마전 한국의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씨가 나와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강의한 것이 있는데 무척 흥미로우니 한번 보라고 권유하였다. 과연 그의 강의를 들어보니 추사가 서예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당시 청나라 학자들의 존경을 흠뻑 받아 그의 팬들이 중국에 많았던 인물로 어쩌면 한류의 원조중의 원조였던 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내용은 추사가 1844년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린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한도는 모든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귀양생활 하고 있던 추사 자신에게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사제지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역관(譯官)으로 북경에 갈 때 마다 북경에서 귀한 책들을 구하여 스승인 그에게 보내준데 대한 답례로 그려준 그림으로 현재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그림은 추사가 직접 그림 제목을 쓰고 그 옆에 ‘우선시상(藕船是賞)’ 이라고 써넣어 제자를 위하여 그린 것임을 밝혔다. 그림과 함께 써넣은 발문에서 추사는 전에는 학문적으로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이제 스승에 대한 의리로서 훌륭한 덕목을 보여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공자의 논어 말씀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칭찬하였다. 중국에서 추사를 흠모하는 친구들과 명사들이 많음을 아는 이상적은 이 그림을 중국에 갈 때 가져가 그들에게 자랑하며 보여주었고 그림과 글에 탄복한 명사 16명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소감을 그림에 적어 넣어 붙이게 되었고 후세 사람들도 추가로 써넣다보니 길이가 무려 14m에 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세한도는1930년대 중엽에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의 손에 들어가 일제 말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서예가 손재형의 노력과 후지쓰카 지카시 가문의 도움으로 국내에 돌아와 국보로 지정되고 국립박물관에 소장되게 되었다.
그림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한도에 그려진 두그루의 소나무(오른쪽)와 잣나무 (왼쪽), 그리고 가운데 그려진 집에 대하여 많은 분석과 해석을 내놓았다. 미적인 아름다움과 철학적인 의미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루지만, 그밖에 흥미로운 것으로는 이 그림이 추사의 치밀한 기하학적 구조에 의해 그려졌다는 해석, 표현주의적이고 간결하여 신남종문인화(新南宗文人畵)를 개척하였다는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붓글씨를 취미로 하는 필자가 이 세한도를 본 순간 떠오른 것은 이 그림이 신남종문인화도 아니요, 치밀한 기하학적 구조의 계산에 의한 그림도 아닌, 바로 추사 자신과 제자 이상적 두사람만을 주제로 표현한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즉, 오른쪽의 소나무를 보면 추사 자신의 호 첫자인 추(秋) 자를 소나무로 표현한 것이요, 왼쪽의 잣나무는 제자 이상적의 이(李)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오른쪽 소나무의 아래 굵은 둥지 가운데가 늙어서 마치 껍질이 벗겨진 모습으로 그린것은 추(秋)자의 오른쪽 글자인 불 화(火)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료를 찾아보니 잣나무는 보통 50m까지 자라고 소나무는 30m 정도로 자란다고 하는데 세한도의 잣나무는 소나무에 비하여 훨씬 작고 가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스승은 제자들이 늘 어린 자식처럼 마음에 여겨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추사가 이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각도에서 추리해본다. 그는 이제 권력도 명예도 다 떨어진 자신을 끝까지 생각해준 제자가 고마왔기에 자신과 제자 두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을 노송(老松)으로 비유하여 껍질이 벗겨지고 구부러지고 휘어진 가지를 통해 굴곡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추사 자신의 모습을, 젊은 역관으로서 중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성장하는 제자 이상적을 이제 막 커가는 잣나무로 표현하고자 한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소나무옆에 바짝 붙어있는 작고 보잘것 없는 자신의 집을 그려넣음으로써 이 소나무가 자신을 나타낸다는 확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제자를 상징하는 잣나무는 아마도 제주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작게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세한도를 다시 보니 추사가 고마운 제자를 다정하게 바라다보는 모습이 떠오르고 그림의 제목과는 달리 따뜻함이 느껴지니 차가움과 따뜻함이 어우러진 이 얼마나 기묘한 걸작인가!
엔지니어인 필자의 이 추리는 기존의 문학적, 미술적, 철학적 해석과는 다른 각도에서 해본 것이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을 들을수도 있지만 내가 만일 추사였다면 어떤 마음으로 제자를 위한 그림을 그려줄까 생각해 볼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유배지의 추사는 이미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숙해져 있어 이 그림을 통하여 어떤 심오한 철학이나 새로운 화풍을 표현하고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마음의 기름끼를 모두 뺀 겸허해진 성품에서 나오는 제자에 대한 진심어린 고마움과 사랑, 그리고 그런 제자와 자신과의 인연을 표현하려는 순수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은 더욱 그 가치가 높다하겠다. 다만 한가지 의문은 과연 제자 이상적과 이 그림을 본 중국의 16인 명사들이 이러한 추사의 뜻을 혹시나 헤아릴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쓴 찬문(讚文)을 하나 하나 읽어볼 수 있다면 그 궁금증도 해소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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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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