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그 동안 찌들고 비틀리고 굴곡 되었던 반도 땅에 ‘하나 된 봄’의 환희와 합창이 절로 넘쳐난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같은 웅장 화려함은 없더라도 세상에 태어나서 철없던 어린 시절을 제하고 거의 40여년이 지나서야 문득 봄다운 봄을 맞고 있다는 느낌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노랫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겨레 한반도다. 거기에 가수 박재란이 불렀다는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라는 노래에 실린 봄 처녀의 설레는 가슴 또한 여지없이 한국인만이 만끽하는 봄의 감정선이다.
봄에는 남풍이 불어온다. 훈훈한 남쪽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에 노란 유채밭이 출렁이고, 한겨울을 난 보리닢들이 서로를 부대끼기 시작하면 덜 여문 청보리 알갱이들이 우후죽순처럼 하늘거린다.
자라나면서 왜 동남풍 또는 남서풍의 따뜻했던 남풍이 까마득해져 버렸을까, 생각해보니 그 동안 ‘북풍’이야기만 줄곧 듣고 살아 온 40여년이었다. 북풍은 추웠다. 그 추위에도 추수해서 텅 빈 논 가운데 세워진 볏단에 기대어 두 손을 호호 불며 연을 날리던 추억 외에는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북풍은 선거가 뭔지를 알게 된 뒤로부터 시도 때도 장소도 계절도 상관없이 선거 때마다 불어 닥쳤다. 한여름에도 북풍이 몰아쳤다. 온 나라가 간첩과 술래잡이를 해야 했고, 북쪽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게 자신들을 영리하게 다스려야 했다. 알려고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게끔 그렇게 지난한 40년은 국민들을 박제해나갔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북한에는 전국에 500여개의 시장이 열린다. 한국의 70년대 ‘5일장’ 같은 것이다. 핸드폰 보급도 500여만대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남한의 가요, 드라마, 뉴스까지 속속들이 모두 알고 있다. 반면에 필자부터도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못해서 거의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으면서도 자각마저도 없었다. 우리가 중동이나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을 잘 모르듯이 전 세계에 북한을 ‘가장 악랄한 나라’로 만든 것은 바로 남쪽의 같은 땅 같은 민족이었다는 사실에 선뜻 동의하기 싫지만 또한 엄연한 사실이라고 하니 이 봄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확실하게 더 그것을 깨달았다.
‘0427 판문점 선언’ 정치적 상징인데도 국민 모두가 자기 일처럼 느낀다. 세월호가 그랬듯이 ‘언론’이 연출하지 않는 생생한 현장 그림이 여과없이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해진 것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사실’속에서 ‘진실’을 분별있게 가늠하고도 남을 성숙한 국민들이 이 땅에 모두 오롯이 살아있었다. 이번 선언이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대의기관인 국회비준을 받아야겠다는 것은 누구의 요구와 필요를 따질 것조차 아니다. 이걸 ‘정치쇼’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국민들의 눈높이는 그동안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명박의 ‘통일 항아리 쇼’나 박근혜의 ‘통일 대박 쇼’가 그야말로 ‘쇼’였다. 그래 놓고도 비준에 동의를 못하겠다고 한다. 다시 집권하면 북풍한설 만들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독재자나 탐관오리들은 백성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적인 경향이 있다. 국민들은 권력자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권력자 주변에서는 그 국민의 실태를 감추고 알 수가 없게 했다. 남북이 어울려 12시간동안 진행된 ‘판문점 정상회담’을 본 국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일 수도 있다. 북이 대화든 외교든 간에 상대라고 한다면 남쪽은 앞으로 공부해야할 일들이 북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할 것 같다.
5월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금강 세종보 수문 개방 6개월 만에 되찾은 금빛 모래’ 지난 6년 동안 흐르는 물을 막아 놓아서 쌓였던 진흙더미가 불과 6개월 만에 모래로 가득하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자연의 순화는 이렇게 놀랍도록 빠르다. 순리를 거역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어쨌든 선거 때가 되니 여지없이 초여름인데도 북풍이 몰아치고 있다. 따뜻한 남풍 뒤에 불어오는 초여름 훈풍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바람이니 ‘신북풍’이라고 해야 할까보다.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노래말의 예지가 놀라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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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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