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이양방식이 지금은 선거라는 방법을 거치는 것이 당연시 되지만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장자 상속이나 형으로부터 동생에게 이어지는 제위 계승 등 대체로 세습의 양식을 택했다. 그렇지만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의 공화정에서와 같이 피에 연유한 세습이 아니라, 아직 선거까지는 오지 못했지만 능력에 바탕한 선양의 방식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그 때의 일이다.
대략 5000년 전 쯤의 일로, 요왕은 순탄하게 국가경영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기력이 쇠퇴해지자 갑작스런 권력 공백을 우려해 다음 권력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의 아들, 단주를 고려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단주가 나라를 통치할 재목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을 찾아 드디어 기산에 은둔하고 있던 허유를 찾아가게 된다.
요왕이 직접 예를 다하여 그간의 사정을 전하며 허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왕홀을 받기를 진심으로 청원하자, 이를 들은 허유가 펄쩍뛰는게 그 태도가 돌연스럽고 걸작이었다. 세상의 권력과 재산에는 관심이 없던 허유였던지라, 그런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자기의 귀가 더럽혀졌다고 여겼는지 황급히 강가로 가서는 허겁지겁 귀를 씻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전의 일회전은 한번 더 있다. 때마침 소 한마리를 앞세워 강가로 나오던 노인이 이 기이한 모습을 보게 된다. 허유가 고개를 숙여 세수를 하는 것도 아니요, 묘한 자세로 귀를 씻으면서 심지어 손가락으로 번갈아 귓구멍을 후벼파는 이 별난 장면을 본 노인이 그 곡절을 물었다. 그리하여 자초지종을 알게된 노인이 소에게 물을 먹이려다 말고 그 자리에서 소머리를 돌리고는 소매를 털며 돌아간다. 이에 이를 의아하게 여긴 허유 역시 다시 노인에게 묻는다.
“아니 소에게 물 먹이러 오신 분이 어찌 소에게 물은 먹이지 않고 그냥 가시는지요? ” 이에 소를 몰던 노인이 하는말 “당신이 귀를 씻은 이 구정물에 내 어찌 소에게 물을 먹여 더럽힐 수 있겠는가. 내 비록 수고스럽다 하여도 차라리 윗쪽의 계곡에 올라 물을 먹이게 해야지, 정녕 여기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소”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이 훗날 유명한 ‘허유 소보’라는 일화로 기록에 남아있다.
비록 과장의 혐의가 있다하더라도 그만큼 허무한 정치를, 혹 정치적 허무를 반영한 것으로는 충분하여 뒷날의 우리에게도 속 깊은 뜻이 전해진다. 국가 경영이라는 정치와 그것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붙는 권력과 그 권력의 미각에 한번 맛들인 자들의 허황된 영화와 번성에 대비되는 쓸쓸한 폐허와 비참한 말로에 관해 우리는 충분히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이 요순의 원시국가이든, 절대 왕정의 군주와 나아가 현대적 민주와 공화의 대통령 시대이건 간에 위정자들의 비극적 소모는 역사를 통해 나타난 허망함과 경계가 먹히지 않아서 몇번이고 거푸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이곳대로, 또 우리를 길러준 그곳은 그곳대로 끊임없는 이유로 시끌하기 그지 없다. 어떨 때는 성원의 박수를, 또 어떨 때는 냉담을 보여 우리는 이쪽 저쪽에 의사표시를 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국가의 차원이라 일일이 보도되고 공론화되어 그렇지 만약 보도되지 않고 낱낱이 열거할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면 어떠하였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속한 가정과 생계를 맡고 있는 사업장, 조금 더 나아가 한인사회 같은 곳 말이다.
비단 국가경영 따위만 그러하고 그 보다 작은 단위에서는 늘 순수이고 행복이며 투명한 결정체였는지, 우리 모두 국회의원과 정치가들을 향해 핏대 세워 욕하고 술상머리를 두드려가며 새삼 분한 듯 정의를 말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비틀거리며 돌아간 우리의 가정에서는, 또 우리가 생계로 삼고 있는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행여 우리는 또 다른 작은 폭군으로 군림하거나 권위와 누림 속에 갑질을 일삼는, 그리고 저열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한 적이 정말 없었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럴리 없겠지만 우리에게 당한 사람들의 의사표시를 성경의 유대시절처럼 돌로 표시하여 던지라면 우리는 어쩜 그대로 돌무덤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런지. 순간의 의심이 너무 방정맞고 불손스러워 입에 올린 나도 양치를하고 들은 우리도 귀를 씻어야 할지 모를 일이나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의 일은 흔히 돌이킬 수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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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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