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기의 호주 트레킹 3
▶ 타즈마니아 오버랜드 트랙
-세계 10대 트레일 꼽혀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자 나라 자체가 대륙인 호주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나라답게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사막과 원시적인 많은 풍경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남단 섬 타즈마니아는 야생 그대로의 매력이 살아있는 곳으로 지구의 지각 운동에 의해 호주 대륙과 분리된 이후 다른 곳에서는 희귀하거나 멸종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답니다.
이 작고 아름다운 주의 거의 절반이 자연공원 및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섬의 40퍼센트가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호주의 다른 어떤 주보다 다양한 풍광을 품은 자연의 전시장으로 아름다운 해안, 웅장한 산맥과 그 사이마다 형성된 깊은 계곡, 드넓은 평원, 무심한 혹은 도도히 흐르는 강과 깊고 고요한 호수, 열대우림과 해안 절벽, 청록색 바다와 눈 쌓인 정상을 넘나드는 19개나 있는 국립공원 마다 하나 같이 그림 같은 자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토록 경이로운 자연을 두 발로 걸어서 확인하는 오버랜드 트랙(Overland Trek). 세계 10대 트레일에도 종종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부쉬 워크(Bush Walk) 트레일로 회자되는 오버랜드 트렉은 호주에서 가장 수려한 산맥을 가로지르는 호주 최고의 덤불 숲 트레킹 코스입니다. 매년 1만 명 이상의 트레커들이 이 구간을 완주하며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야생의 원시림이 주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합니다.
매일 출발 인원은 한정해서 그것도 입장료를 2백불씩 지불케 하고 예약을 받기 때문에 일년전 부터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산장 등이 잘 구비되어 있어 자유롭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장엄하고도 순결한 태초의 신비로운 자연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트래커들의 천국이 된 타즈마니아를 걷다 보면 그 깊은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마저도 잊게 되는 무아경에 빠질 것입니다.
-도브 호수의 풍경
타즈마니아의 북쪽 관문인 데본 포트(Devon Port)에서 내려 크레이들 마운틴 국립공원으로 달려갑니다. 2월의 오버 랜드. 가을을 채비하는 산하는 대체로 녹황으로 물들어 가는데 영혼마저도 씻어질 듯한 도브 호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릴라 호수와 웜뱃 풀을 지나 마리온스 전망대까지 올랐습니다. 거울같이 맑은 도브 호수 너머에 솟아 있는 크레이들 마운틴의 들쑥날쑥한 돌로마이트 정상을 바라보노라면 태초의 자연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호수에 비친 크래들 마운틴은 자연이지만 마치 살아있는 듯합니다. 호수 속 하늘이 진짜 하늘보다 더 파랗고 호수 속 산봉우리는 진짜 산봉우리보다 더 생생한 초록빛입니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10여 개의 봉우리 가운데 움푹 파인 부분이 마치 요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도브 호수의 풍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는 자살바위까지 올라가 이름처럼 비둘기를 닮은 도브 호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니 대도시에선 맛볼 수 없던 평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자연은 중후한 색감을 휘감고 있었고 나무 하나 돌 하나에도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리온스 전망대에서 한숨 쉬며 아래를 보면 우리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도브 호에 거울처럼 비치는 산 그림자들의 고요한 수면이 단연 으뜸입니다. 그 후 나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종주자들을 잠시 갈등케 하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체력에 따라 서너 시간 걸려 해발 1,500미터 정상까지의 크레이들 산정 등반을 하고 오느냐 그냥 지나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연 우리는 정상등정을 위해 왼쪽 길을 택해 고도를 올립니다.
-닭벼슬 산정에서의 욕심
자갈과 바위 길을 숨이 가쁠 정도로 힘들게 당일 등정 인파들과 섞여 밀리듯 산정으로 올라 이어지는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마침내 정점에 도착합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장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오름길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더욱 작아진 도브 호수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산군들의 풍경이 빼어납니다.
청명한 일기에 푸르른 하늘이 받쳐주니 수려한 한 작품이 만들어지니 걷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자연의 포상입니다. 주위의 협곡과 호수, 원시의 자연이 어우러진 청정한 지역에 우뚝한 닭벼슬 모양의 신령한 크레이들 산 그 정점에 서서 타즈마니아의 에너지가 집중되어 내 몸에 스며든다 생각하니 용솟음 치는 혈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상 가장자리에는 수천길 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산정에서 끓인 라면에 밥말아 먹은 힘으로 기어코 작품 사진들을 남기려 건너들 갑니다. 그들을 두고 멀리서 구도를 잡아 보니 완벽하고 멋진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구비치는 산마루의 물결.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가 장엄한 타즈마니아 산군을 베일로 가리니 저 산 또 저산 너머에는 어떤 감춰진 비경들이 있을까 우리네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참 좋은 충격. 참 미려한 풍경. 한없이 머물고 싶은 닭벼슬 산정에서의 정직한 욕심이랍니다.
-5박6일간 1천킬로미터 여정
블러프 산장에서 하루를 유하고 청아한 바람이 이어져 불어오는 아침 기류에 실려 길을 나섭니다. 본격적인 트레일에 들자 키 낮은 관목 지대와 버튼그라스가 빽빽하게 들어찬 초원이 펼쳐집니다. 초원을 지나니 오랜 세월동안 모이고 모인 물을 품고 있는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이어지는 타즈마니아 특유의 신비로운 풍광이 더 가깝게 다가서고 인적 드문 원시림 속엔 삶의 길이만큼 두터운 이끼로 뒤덮인 숲이 청량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타즈마니아의 오버랜드 트랙은 5박 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1000km를 걷는 트레킹 코스입니다. 완전한 백패킹 형태로 진행하니 고스란히 6일간 먹고 자고 입을 짐을 직접 본인이 메고 가야하는데 우린 또 한식을 고집하니 무게가 제법 묵직합니다. 잠은 우리네 대피소 같은 산장(Public Hut)과 야영지 텐트에서 해결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시설만 제공되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니 체력과 야생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버거운 트레킹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사산의 풍경
고도를 높일수록 키 큰 나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키 작은 관목들과 어깨동무하며 걷는데 갑자기 눈앞엔 하이얀 눈길이 펼쳐지며 시공을 초월한 다채롭고 이색적인 풍광이 눈에 잡힙니다. 광활한 초원과 이끼로 가득한 원시림과 보석처럼 빛나는 산중 호수들을 지나며 대자연의 품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서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들도 함께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다시 드넓은 초원 사이를 헤집으며 가는데 점점이 맑은 물 고여 있는 호수와 그 뒤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장엄하고도 비범한 풍광을 선사하니 하루해가 어찌 저물어 가는지 산중에서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특히 나흘째 키아 오라 헛까지 가는 길은 9km에 불과하지만 넘어야하는 펠리온 갭과 이 오버랜드 트랙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오사산을 추가 산행으로 다녀오면 거의 하루해가 넘어갑니다. 오버랜드 트랙을 찾는 트레커의 대부분은 이 오사산을 등반하는데 왕복 4~5시간이나 걸리는 녹녹치 않은 코스지만 타즈마니아 최고봉에 선다는 의미와 그에 대한 포상으로 주어지는 거룩한 풍경은 분명 남다를 것입니다. 평탄치만은 않았던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거대 바위와 함께 정을 나누며 한몸이 되어버린 이끼 덩어리와의 조화가 돋보이는 정상부의 풍광은 부드러우면서도 장엄합니다. 힘들여 올라와 얻게 되는 역시 이 오버랜드 트레킹의 꽃이라 불리는 오사산의 풍경입니다.
-보트 크루즈로 마무리
번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만끽하는 이 삶의 여유가 우리에게 내려진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인데 초원과 너덜지대 계곡과 이끼 가득한 원시림 등 다채로운 풍광을 누비며 얼마나 걸었을까. 오랜 자연의 세월을 말해주듯 하늘로 높이 솟은 유칼립투스 군락이 트레커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멀리 조망되던 오클리산이 어느새 지척에서 한껏 선명해져 있습니다.
계속 남쪽으로 메마른 경엽수림과 탁 트인 버튼그래스 평원을 지나 세인트클레어 호의 나르시스 헛까지 소풍나선 초딩이처럼 신나게 걸어갑니다. 이제 종주는 남반구에서 가장 깊은 이 천연호수에서 보트 크루즈로 마무리됩니다. 밀린 숙제를 일시에 폭풍처럼 마쳐버린 이 홀가분함. 그래서 백팩킹 종주는 이런 맛에 하나 봅니다. 보트에 승선하니 맑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우리의 기억처럼 오버랜드의 풍경들도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도착지점인 신시아 호수 만에 있는 세인트 클레어 호수 방문자센터와 그 부속 건물들이 낯설고도 왜소하게 여겨집니다. 우리같은 트레커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다수 관광 목적으로 찾은 방문객들 인파를 헤치고 종주를 마감한 이들을 배려한 기념 촬영 장소에서 기록을 남기고 우리들의 여정은 끝을 맺습니다. 길이란 것이 이어져 끊이지 않듯이 나의 이 트레킹 여정은 간단없이 이어집니다. 영겁의 세월이 휩쓸고 간 땅을 걷는 특별한 여행. 그곳에서 대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산길 호주 오버랜드 트랙. 그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 지낸 행복한 기억을 품고 다시 또 지구의 이방을 걷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말입니다.
www.mijutrekking.com
<
글·사진/ 박춘기(미주 트레킹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