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노을에 물들고 싶다 평화의 길, 자족의 길…그레이트 오션 워크.바다가 그리웠습니다. 무척이나 그랬습니다. 뭍에서 태어났고 유년을 도회지에서 보내고 청소년기를 지리산 자락에서 청년기를 또 다시 회색빛 도시에서 보내다 보니 바다는 언제나 나에겐 피안에 있는 동경의 세상. 바다. 그 해안선.
-104km의 해안 절벽 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이라 불리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가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고 귀향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착공되어 13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해안도로가 준설되어 있고 이 도로보다 더 해안가 쪽의 오솔길을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라고 합니다.
장대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호주에서 가장 자랑하는 세계적인 걷기 코스인데 멜버른 남부 해안 도시인 질롱의 근교인 토키(Torquay)에서 와람불(Warrambool)을 잇는 바닷가의 절벽들을 깎아서 만든 총 연장길이 214㎞에 달합니다만 트레킹은 아폴로만(Apollo Bay)에서 시작해서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선사하는 12사도상(Twelve Apostles)이 있는 104km의 해안 절벽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해안선으로 이어진 협곡과 깎아지른 절벽, 우거진 수풀, 하얀 백사장 등 대자연의 신비와 남극해를 넘어온 차가운 바람이 창조해 놓은 경관과 거대한 몸집으로 달려와 하얀 포말로 부서진 뒤 일렁대는 파도는 세계 최고의 경관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줍니다.
1년 중 트레킹을 할 만한 시기는 남반구의 봄철인 9~11월, 가을철인 4~6월이 최적기라 말들을 하지만 뜨거운 여름을 즐기려면 12~2월도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찾으며 걸음의 축제 끝에 깊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고 얼음에 재운 시원한 아이스 맥주를 목젖까지 같이 넘길 듯이 들이키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특별한 여정이겠는가!
-아바타 시대 속으로 이 길을 걸으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연 곳곳에 펼쳐놓는 미려한 풍경들입니다. 벨스 비치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도를 만나고 앵글씨의 모래사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고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인 케이프 오트웨이를 배경으로 작품 사진 남기는 것도 할 만한 것입니다. 물론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남극해에 당당히 솟아 있는 12사도상으로 일컫는 석회암 바위들. 다음은 이 지역만이 품고 있는 독특한 대자연과의 만남입니다.
우림지역과 강은 물론 오래된 화산과 거친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자연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Great Otway National Park에서는 웅장한 폭포와 수정같이 반짝이는 협곡을 감상하면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나무들이 두터운 이끼로 덮여있는 아바타 시대도 경험합니다. 인적이 드문 모래 해변, 울창한 숲, 아찔하도록 호주에서 가장 높은 절벽길을 걸어가면 그 탁 트인 풍광에 저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또 이 길 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운은 다양한 야생 동물과의 조우입니다. 별로 반갑지 않은 굵은 뱀들도 수시로 밟을 뻔하지만 5월에서 9월까지 해안 가까이에서는 흰배 돌고래의 출현 뿐만 아니라 출산 장면도 구경할 수 있으며 넓은 바위위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물개 떼의 평화로움을 부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Great Otway National Park에서는 앙증맞은 어린 새끼를 업고 있는 야생 코알라에 시선이 뺏기고 왈라비와 나무늘보도 이따금 만나게 되고 여름이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딸기를 따먹다가는 다양한 크기와 빛깔의 캥거루가 빈번하게 우리 앞을 지나곤 합니다. 이렇게 대자연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들과 감정을 나누며 걷는 길. 평화스런 자족의 길입니다.
-남극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그레이트
오션 워크의 시작점은 호주 제 2의 도시 멜버른입니다. 호주 내에서 가장 유럽풍의 유산을 간직한 이곳은 1년 내내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문화 예술의 중심도시로 건물마다 고풍스러운 구 건물과 독창적인 현대 예술이 그대로 표현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이런 멜버른에서 두 시간 거리의 작은 어촌 마을 아폴로 베이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해안선과 다양한 동식물을 간직하고 있는 오트웨이 국립공원 전역을 관통하며 펼쳐져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은 해안선과 맞닿으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시원한 바다가 펼쳐집니다. 은빛 고운 백사장 길은 해변 바위길 위로 인도하고 한 번씩 맹렬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웃음으로 즐기는 길. 특히 왜 이 길 이름에 그레이트를 접두어로 넣었는지 가서 보면 느끼게 되는데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장점만으로도 호주 제 1의 걷기 코스로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느리게 걸으며 도보 여행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뜻한 길. 남극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해안절벽을 따라 나 있는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걷는 기분은 정말 별유천지 비인간이 된 듯합니다. 거대한 절벽이 우뚝 솟은 바위에 부딪히는 성난 파도, 너무도 평화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푸른 만과 한 결 바람에 모래톱이 쌓여가는 아름다운 해변과 같이 해안선 절경부터 초원과 숲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는 오존 향기 가득한 울창한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좋은 곳입니다.
트레일은 총 여덟 구간으로 나뉘며 코스마다 각각의 볼거리와 매력을 지니고 있답니다. 큰 고도의 변화도 별반 없이 순탄한 104km의 길. 우리네 습성이라면 나흘만에도 모두 쉽사리 걸을 수 있는 깜냥도 안 되는 거리인데 그래도 초단시간 종주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면 그저 차분히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며 그 자연이 주는 최대의 희열을 맛보며 걸을 일입니다. 우리도 무척이나 자제하려 했지만 결국은 5일 만에 종주를 마감하고 예정했던 6일에 하루 벌은 시간을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드라이브하며 관광하는 낙이 더했지만 말입니다.
-따개비와 고동 안주
2채의 럭셔리 펜션에서 잠자고 한 채의 넓은 베란다에 12명이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도록 식탁을 모으니 근사한 가든 식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트레킹을 시작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니 어느새 마랭고 할리데이 파크를 지나 오솔길을 끝내고 광대한 오션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급한 마음에 바닷가 모래톱으로 달음질칩니다. 얼마나 짠지 물맛도 보고 손도 씻고 하다가 검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따개비와 고동. 홍합들을 발견합니다. 섬 출신 참가자가 길을 내어 모두 붙어 훑어내니 이내 한 봉지가 되어버립니다. 조금은 성가시지만 끝끝내 숙소로 가져와 저녁 식탁에 디저트 겸 안주로 장만되어 나와 별식으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오트웨이 등대의 풍경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선을 따라 뻗어있습니다. 날이 거듭되고 하루를 마감하는 해질 무렵이면 강렬한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드넓은 해안과 울창하고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걸으니 어느새 여행자는 대자연의 품에 안긴 듯 평온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 특히 에어리버와 조안나 비치 구간에는 거목들의 가지 방향이 일정하게 향하고 있는데 남극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바람에 지쳐버린 현상이 장엄하면서도 애처롭습니다. 화산 작용에 의해 기묘하게 형성된 바위나 거대 암반들이 해안선을 가득 메운 셰리 비치는 문득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 들게 합니다. 조안나 비치를 수놓은 트레커의 발자국과 석양빛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욱 자아내면서 센티멘탈해지는 향수도입니다.
오트웨이 등대를 두고 보는 먼 풍경이 더욱 아름다운데 해안선으로 내려서니 귓가에 들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가 트레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고 청아한 바람에 실려 가는 듯이 몸도 날려갑니다.
오늘은 종주의 절반 정도되는 캐슬 코브를 지났으니 날마다 연회지만 오늘은 특식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동행들과 담소로 웃음꽃을 피웁니다. 총총한 별이 어느새 맑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오늘따라 더욱 잠잠한 남극해는 저도 끼워달라고 한 번씩 투정부리듯 물결을 보냅니다. 깨어지면 안될 듯한 이 완벽한 여행의 행복. 그래서 꿈과 생시를 넘나들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미주트레킹 www.mijutrek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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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춘기(미주트레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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