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과 언론매체들은 김정은이 지난 달 중국에 가서 시진핑 주석에게 말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통한 비핵화의 해법에 대해서, 그리고 트럼프가 존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 등 초강경 호전파들을 안보진에 등장시키면서 떠오르는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식 비핵화 방법에 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가 안보보좌관을 경질한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니었다. 전임자 맥매스터도 예방전쟁을 주장한 강경파였다. 새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볼턴과 함께 북한의 정권교체를 주장했지만, 공개적으로 선제공격은 지지하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전임자들을 해임한 이유는 그들과 마음이 맞지 않았고, 러시아와 이란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워싱턴에는 북한이 시간을 끌면서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핵무기를 완성하려 한다는 의심이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속전속결로 일괄타결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제재압력과 선제타격 등의 군사위협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주변의 강경파들은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상대방의 공격징후가 없는 상태에서 핵 미사일 등을 예방 차원에서 사전에 타격하는 전쟁)을 주장한다. 즉 북한을 상대로 미국의 공격이 두려우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최대의 경제 및 외교적 압력을 가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대외정책을 자기 마음대로 수행할 수 있다.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누구든 파면시킬 수 있고 의회의 인준을 전제로 누구든 임명할 수 있다. 트럼프는 파격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또 그가 전임자들의 관행을 따라야 한다는 법적 제약은 없다.
그는 대북협상의 관행을 깨고 “아래서부터”를 “위에서부터”로 전환시켰다. 이 것이 나쁠 것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가는 연역적인 방법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북한이 선호하는 합의 형식은 일괄타결, 조건은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다. 북한의 요구조건은 잘 알려져 있다. 체제안전보장, 북미간의 국교정상화. 평화협정, 미군철수, 제재 해제, 경제협력 등이다. 이 중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핵 폐기다. 협상은 성격상 주고받기의 합의 과정이기 때문에 무엇을 언제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와 김정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누가 하라는 대로 하는 성격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그의 말과 행동은 위험과 긍정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어떻게 해서든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사방으로 몰리고 있는 그가 핵문제를 해결하면,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업적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두 사람이 주어진 문제를 속결하려는 큰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에서 헌법이나 당 규약을 초월하여 국가의 진로를 좌우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밖에 없다.
미국이 아무리 조속한 핵 포기를 강요해도 김정은이 백기 항복을 할 리도 없다. 따라서 첫 번째 북미정상회담은 커다란 윤곽의 핵 철폐: 합의를 보고 합의이행과 이행검증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동결과 철폐의 2단계 또는 동결, 철폐 및 핵무기고 최종 처분 등 3단계 접근법도 고려할 수 있다. 앞으로 북미정상 회담의 성사 여부와 그 준비과정은 좀 더 두고 봐야한다. 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우선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응신을 보내야 한다.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3명을 석방하고, 북한에 전시중인 푸에블로 미국 함선을 귀환시킬 수도 있다. 미군 유해 발굴 작업도 재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기간 중엔 핵미사일 시험을 않는다는 선언과 함께, 이미 개발한 무기의 증산도 보류할 수 있다는 신호를 워싱턴에 보낸다면, 대화의 분위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북한이 협상에서 자주 쓰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 그대로 하면 된다. 좌우간, 북미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후 한반도에는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선제타격 등 전쟁소리가 들어가고,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화두가 등장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상대로 벌린 비핵화 도박에서 성공한다면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공동 번영의 길도 열릴 수 있다.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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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전 존스합킨스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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