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대학원에 다니는 두 애들이 며칠 집에 다녀갔다. 큰 애는 대학 졸업 후 여러 해 일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는 경우라 대학원 진학이 좀 늦었다. 두 애들과 짧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낸 후 떠나 보내면서 옛날 그 애들을 키울 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지금도 우애가 돈독한 둘 사이를 차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큰 애가 서운하게 느꼈을 법 한 일들도 제법 있었다.
둘의 나이 차이는 세 살 반 정도이다. 집안에서 첫 손주로 태어났던 큰 애는 태어나자 마자 모든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 애의 일거수 일투족이 조부모들부터 시작해 고모, 외삼촌, 이모 등 모두의 이야기 거리였다. 그러다가 둘째가 태어났다. 그 때 큰 애가 평소에 자기만 쳐다 보던 가족들의 시선이 갓 태어난 애에게 돌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마 3살 반의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배신감이 찾아 들었을 것이다.
“동생”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나이에 감정 처리가 힘들었을텐데도 다행히 동생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둘째의 존재가 불편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둘째를 숲 속에 갖다 두면 안 되겠냐고 넌지시 물어 보는 것이었다. 그 곳에 호랑이나 늑대 등 무서운 동물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지 하고 되묻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러면 사슴과 토끼들이 있는 곳을 찾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큰 애에게 좀 더 잘 해 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 대화였다.
둘째가 서너 살이 되어 조금씩 힘도 쓰게 되면서부터는 형이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려고 형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힘으로만 한다면 당연히 형을 이길 수 없었겠지만 둘째의 끈질긴 노력에 형이 항상 져 주었다. 그 때마다 큰 애는 웃어 제끼고 했지만 속으론 불편한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둘째에게 형도 엄마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주지시키지 못하고 큰 애의 양보를 대견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후회 된다. 형이라고 해 보았자 겨우 6-7살의 어린애였었는데 말이다.
두 애들 모두 동네 축구 팀에서 축구를 하면서 가끔 나와 집 앞 뜰에서 연습 겸 공놀이를 했다. 그럴 때 내가 공을 교대로 던져 주면 발로 트래핑 하는 연습을 하며 결과를 점수로 평가하곤 했다. 둘 다 좋은 점수를 받기를 기대했지만 서로 상대 평가에도 관심이 있었다. 특히 둘째는 형 보다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많이 받는데에 무척 신경을 썼다. 형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내가 공평하게 공을 던져 주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작은 애가 점수를 더 잘 받아야 울지 않고 끝날 수 있기에 큰 애한테는 좀 더 어렵게 공을 던져 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게 했다. 큰 애도 점수를 잘 받아 동생에게 이기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형이니까 동생에게 양보하는 게 더 낫겠다는 나의 일방적인 생각은 옳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도 형이 동생 보다 넓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진 게 꼭 편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까이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가끔 두 애들을 장난감 가게에 데려가 장난감을 사 주셨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둘째 애가 좀 더 비싼 것을 들고 나왔다. 큰 애는 할아버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비싼 것을 고르지 않았다. 비싼 것을 만지작 거리다가도 결국은 싼 것을 골랐다. 그러나 둘째는 가격에 상관 없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집어 들었다. 큰 애가 동생에게 비싼 것을 고르지 말라고 하면 동생은 형에게 돈은 할아버지가 내는데 왜 형이 그러느냐고 항변했다. 그런 대화를 듣던 할아버지가 큰 애에게 너도 비싼 것 골라도 된다고 해도 큰 애는 그러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든 것인지 몰라도 자신도 비싼 것을 가지고 싶었을텐데 자제했던 큰 애의 마음을 헤아려 볼 때마다 가슴이 짠했었다.
애들을 키우는 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잘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찾아든다. 큰 애에게 미안한 적이 많았다. 그런 것을 겪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던 큰 애가 고맙다.
<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