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베어낸 집앞 논바닥에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삽과 괭이로 동그란 구덩이를 여기저기 파고 있을 때 주막집 김행배는 손나팔을 대고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영화 ’여자의 일생‘이 금일 저녁 봉저리 노천극장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팔짝팔짝 뛰어 다닌다.
15원짜리 공짜 입장권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가설극장 세울 구덩이 하나씩을 파야만 했다.
아버지는 일손이 딸려서도 그렇지만 ‘어릴 때 영화 보면 버린다.’고 그 근처에도 못 가게하고 소 목줄 잡혀주며 억지로 뒷산으로 보내면 순간 어린 마음에 낙심이 컸다. 라디오마저 변변찮았던 시절, 굴뚝에 연기 나는 해 질 무렵이 되면 동네는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자의 구슬픈 노래와 논두렁타고 길게 늘어선 건너동네의 영화팬들로 집 앞은 이미 장사진이다.
식당도 없는 동네이니 동네 한가운데 살던 어머니는 영화관계자들의 밥상을 차려주신다.
잠이 올 리가 없다. 영화가 상영되고 조용해지면 스크린 밖에서 거꾸로 보이는 희미한 활동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 내용이 뭔지도 모르겠다.
문득 오래전 낡은 필름에 하염없이 빗줄기마냥 갈라진 흑백화면에서 칼라화면으로 바뀌는 시기의 기억을 잠시 더듬어 봤다.
흑백 필름은 명도가 중요했으므로 실제의 헐리우드 의상과 무대, 배경등은 요즈음보다 훨씬 원색으로 화려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빨, 노, 파 3가지의 원추세포가 있고 각 세포마다 100가지씩 농담의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이 세 가지의 조합은 100만 가지의 색상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 중 한 가지에 이상이 생기면 오직 1만개로 줄어버리게 되는데 이걸 색맹이라고 한다.
색맹(color blindness)은 남자의 경우 약 6%가 된다고 하고 여자는 0.4%정도여서 남자들에게 많은 현상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운전면허 갱신 할 때 거치는 경우외에는 일반인들은 그냥 잊고 지나간다. 그 ‘흑백의 기억’이 요즈음에 새롭다.
한편으로 미맹(味盲:taste blindness)이라는 게 있다. 정상인들이 느낄 수 있는 맛을 전혀 모르거나 다른 맛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PTC(phenylthiocarbamide)라는 물질로 가려내는데 보통은 ‘쓴맛‘으로 느끼는 데 백인들의 30%, 황색인은 15%, 흑인들은 3%가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가령 음식점 주방장이 미맹일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달고, 짜고, 맵고, 신 맛들에 이 쓴맛의 강도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의 음식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술의 쓴맛을 못 느껴서 말술을 마시는 경우나, 눈으로 즐기는 외식을 자주하는 경우, 거식증의 경우에는 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3월 16일 울산 시청등 울산시장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서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경찰에 대해서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고 했다.
‘개’자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그러나 ‘개새끼’는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패륜의 산물’이라고 봐서 ‘욕’이다. 영어의 ‘son of bitch’도 ’bitch’가 ‘암캐’라는 본래의 의미가 있으니 욕에 대해서는 동서양이 같다. 훨씬 이전의 일이지만 이명박 정권시절에 이런 비슷한 일이 공중파 방송에서 일어났었다.
2012.5.26. 한 TV토론에서 전원책이라는 분이 상대 토론자에게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라고 해 봐라. 그렇게 못하면 ‘종북이다.’ 라면서 상대토론자를 몰아 부친다. 6년 전 일이다. 말하는 분들은 경험의 산물이 말을 통해서 무의식중에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주인처럼 부렸던 ‘개’가 어느 날 ‘개새끼’로 보였을 수가 있겠다.
같은 당 홍지만 대변인은 3월 28일 세월호사고 초기 7시간에 대한 검찰조사 발표를 보고 또 한번 황당한 발표를 잇는다. ‘진실이 밝혀졌다. 이제 7시간으로 국정 농단한 세력, 시민단체, 촛불등 주범들은 석고 대죄하라.’ 물론 두 사안은 곧바로 사과와 취소로 봉합하려 했지만 평소에 어떤 눈과 어떤 맛을 보고 느끼면서 살아왔겠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줘 버렸다.
영화는 관중의 눈에 맞춰야 하고, 음식은 손님의 입맛에 맞춰야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색맹인 분이 영화를 찍을 수도 있고, 미맹인 분이 주방에서 일 할 수도 있다. 다만 자기의 눈과 혀를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멋도 상(象)도 모르는 개새끼’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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