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올해의 책’ 등 미국 뒤흔들고 한국 상륙…출간 직후 3쇄 찍어
"나는 소설의 플롯(줄거리)과 내러티브(이야기)가 응집되고 구조적으로 견고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독자들이) 내 픽션에 깊이 몰입되는 경험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작가로서 내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소설 '파친코'(문학사상)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재미 한국계 작가 이민진(50)은 최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소설은 지난해 전미(全美)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영국BBC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는 등 미국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이어 지난달 19일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돼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출간 직후부터 주문이 쇄도해 벌써 3쇄를 찍었다. 근래 이런 흡인력 있는 한국 소설이 없었기에 서사를 즐기는 독자들의 환호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진 작가는 "나는 분절된 내러티브와 실험적인 소설들에도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식으로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앞으로도 흡인력이 강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매끄러운(seamless) 내러티브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 작품도 가능한 한 깔끔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횟수의 퇴고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결국 매우 특정한 스타일의 글쓰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강렬한 잔상이 남는 것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800쪽 분량의 방대하면서도 촘촘한 글에서 느껴지는 치열한 작가정신, 그 이야기 속에 살아있는 실존 인물들의 숨결 덕분일 것이다.
작가가 30년 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역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소설이 지닌 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는 "책을 끝내게 돼서 기쁘다. 매우 안도감을 느낀다"며 "내 관점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4대를 걸쳐 살아온 한국인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20세기 초 부산 영도에서 가난하게 살던 '양진'과 그녀의 딸 '순자', 순자가 개신교 목사인 남편 '이삭'을 따라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모세), 모자수가 낳은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가족 4대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일본인들의 끈질긴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결국 파친코 사업으로 돈을 버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작가는 외부인이면서도 완전한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이국 땅에서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아온 한국인이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재일동포들과 깊은 교감을 이뤄냈다.
그러면서도 좀더 합리적인 서구의 시선으로 이들이 놓여있는 일본 사회의 부조리를 냉철하게 바라본다. 또 이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투쟁의 양상을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작가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을 결행했다.
일요일도 없이 일한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그에 부응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작가는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하며 한인 이민 사회의 성공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인 글 쓰기로 들어선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파친코'는 그가 대학 때 들은 한 강연 내용에서 출발했다. 일본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들은 그곳의 한국인들이 심한 차별을 받아왔으며 한 중학생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를 돌아보며 "아이들이 어떤 다른 아이들을 순수하게 민족성(ethnicity)과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 생각을 계속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있던 작가는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단편으로 다뤘다가 이후 남편을 따라 일본 도쿄에서 4년간 살게 되면서 수많은 한국인들을 만나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때 아주 많은 한국계 일본인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품격이 있었어요. 내가 그들을 만나며 가장 좋았던 것은 그들의 영리함과 정신력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매우 재미있고 유머러스했어요. 이런 점은 내가 전 세계의 한국인들에 대해 좋아하는 속성이기도 하죠."
그는 특히 '순자'와 같은 여성들에 대해 "그녀와 같은 많은 한국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하면서 이들에게 엄청나게 감탄했다"고 떠올렸다.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한국 여성들이 문맹이었는지를 알고 더 충격받았고, 그들의 영리함과 삶을 헤쳐나가는 요령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또 소설 속 '고한수'처럼 일본 이민 초기 조선인들이 몸담게 되는 야쿠자에 관해서도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야쿠자는 악의 세력입니다. 조직적인 범죄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죠. 그러나 나는 제도적인 차별로 인해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고 범죄의 삶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범죄 행위를 용인하지 않지만, 합법적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은 냉혹한 일이죠."
소설 후반 순자의 아들 노아의 선택에 관해서는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지만, 끔찍한 고통으로 인한 것"이라며 "그 고통이 매우 현실적인 진실한 고통임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첫 배경인 부산 영도를 가봤는지 묻자 "영도는 못 가봤고, 부산은 가봤다. 우리 어머니가 부산 출신"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는 서울과 제주를 꼽았다.
그는 40년 넘게 영어를 쓰면서 한국말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여전히 한국 이름을 고수한 채 자신의 절반을 한국인으로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좋아합니다. 한국인은 엄청나게 강력한 역사와 유산을 가진 아주 놀라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 이민진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내 이름과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깁니다. 동시에 나는 내가 서양인인 것도 사랑합니다. 동양과 서양 문화 양쪽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특권이죠. 나는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이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으로는 전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이번 '파친코'에 이어 디아스포라 '한국인들(The Koreans)'에 관한 3부작의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고 했다.
"'AMERICAN HAGWON(미국 학원)'이라는 제목이에요. 전 세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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