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둘째 애가 며칠 다녀갔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볼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기에 이제는 며칠, 아니 단 몇 시간을 볼 수 있어도 감사하다. 공부를 다 마친 후 워싱턴 지역이 아니라도 좋으니 동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은근히 내비친다.

둘째는 자라면서 운동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와 만나면 예전에 운동했던 때 얘기들을 종종 같이 나눈다. 봄 가을에는 첫째 애와 마찬가지로 항상 동네 팀에서 축구를 했다. 그런데 동네 축구 팀 코치들은 거의 모두 선수들의 부모들이었다. 어차피 라이드를 주기 위해서라도 오는 김에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다. 한 선수의 부모가 코치일 경우 과연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할 수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내가 경험했던 대부분의 자원봉사 코치들은 공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코치의 자기 아들에 대한 편애가 몹시 마음에 거슬린 경우가 있었다. 그 코치의 축구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은 나무랄데가 없었다. 대학교에서 축구선수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코치는 팀 전체의 필요 보다는 자기 아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기술 향상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아들은 팀의 골키퍼 자리를 맡았다. 그런데 아직 기량이 상당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프로 축구 팀 골키퍼를 흉내 내고 있었다. 종종 골문 보다 훨씬 앞에 나가 있다가 머리 위로 넘어 가는 공을 미처 쫓아가 막지 못해 실점하곤 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 있다가 언제 다시 골문으로 가까이 돌아와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미숙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 코치가 당연히 지적해야 했지만 그러질 않았다. 다른 선수들의 실수는 지적하면서도 자기 아들한테는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부모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코치에게 밉보여서 자기 자녀들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봐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둘째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내가 우리 애의 동네 축구 팀 코치를 우연찮게 하게 되었다. 사실 그 팀에 자원했던 다른 코치가 있었는데 그는 어떻게 코치 역을 맡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축구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팀의 첫 연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가 내가 보조 코치를 자원했다. 아무래도 도와 주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공식적으로는 보조 코치였지만 실제로는 코치 역을 맡게 되었다. 후에 당시 카운티 검사였던 그 코치가 직장 일로 바빠서 종종 연습조차 나올 수가 없게 되자 내가 혼자 도맡아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내가 축구를 잘 해서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친구들과 동네 골목길에서 공을 차고 놀던 때의 실력을 가지고 팀의 코치 역을 맡은 것이다.

그런데 정식 시합을 치루면서 선수들의 출전 시간 배정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모든 선수들이 균등하게 기회를 갖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모두에게 정확하게 같은 분량의 시간을 주기는 어려웠다. 결국 일부 선수는 출전 시간이 좀 더 많을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 때 누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느냐가 민감한 결정인 것이다. 그럴 경우 일반적으로 시합의 상황을 고려한다. 그래서 지고 있거나 스코어가 비슷하면 좀 더 잘하는 선수들을 시합에 더 투입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코치로 있으면서 우리 집 애는 다른 선수들보다 오히려 출전 시간을 항상 적게 배정 받았다.

그로부터 이제 15년 이상 지난 지금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사실 그 때 나의 선수 출전 시간 배정은 나를 위한 경우가 더 많았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시합 때마다 둘째 애가 자신을 좀 더 출전 시켜 주길 갈망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그것은 둘째 애가 자신의 아버지가 코치라서 특권이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다른 선수들이나 부모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다른 부모들로부터 자기 아들부터 챙기지 않는 공평한 코치라는 평을 듣고 싶었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설명일 것이다. 둘째에게 많이 미안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