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전임 정권의 잘 잘못에 이런저런 시비를 하거나, 먼지 털듯 털어서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 후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정치적 풍경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년 구형을 받은 가운데 감옥에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난 22일 구속됐다. 사상 초유의 두 전임 대통령들이 동시에 수감된 것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썩어서 쌓여 있는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 정책’을 찬성한다. 하지만 적폐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빨리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었던 경제적 급성장의 부산물로 생각하고 그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문 정권이 당대에 그 끝을 보려고 서두른다면 국민들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말 그대로 ”앞으로 20년 동안 진보정권 집권을 위한 보수 싹 자르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하게 될 것이고, 설사 친문 진영에서 20년 동안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후 보수 정권이 또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한풀이 식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사무처 시무식에서 “적폐청산을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6선의 국회부의장 출신인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적폐청산은 반드시 돼야 한다”면서도 “인적청산에만 급급해 제도적 보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임 정권의 먼지를 털어내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마치 한국판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같은 전방위적 적폐청산에 대해 여권 일부에서도 형성되고 있는 우려감을 친문재인 진영의 원로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거론한 것이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이 현 정권도 적폐를 청산하는 도구로 감사원과 검찰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음식을 만드는데 편리하게 사용되는 부엌칼이 정권이 바뀌면 나를 찌를 흉기가 되는 것도 모르고 그 두 조직으로 개혁의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선 정부와 국회의 과감한 자정, 기득권 내려놓기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바로 감사원과 검찰의 독립이다.
감사원은 국가 예산의 낭비나 불법 유용, 그리고 비합리적인 사업추진 등을 감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선진국일수록 한결 같이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하기위해 감사원장의 임기가 최소한 10년 이상으로 영국은 아예 종신직이다. 미국은 감사원이 의회 소속으로 되어 있고 원장의 임기는 15년이다. 한국은 임기가 4년으로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그러니 늘 대통령의 눈치를 보다가 대통령의 지시가 있으면 마치 대한민국 땅에서 공직비리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을 듯이 칼을 휘두르지만 정작 부정의 밑바닥까지 제대로 감사한 적이 별로없다.
한국 검찰의 인사권은 법무장관, 즉 대통령에 귀속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수사지휘권,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독점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누구든 권력만 잡으면 검찰을 장악하려 든다. 일본만 하더라도 검찰이 독립되어 있다. 총리나 법무장관이 어떤 수사에도 관여할 수 없는 법 제도이다. 그리고 검찰총장이 검찰의 인사와 수사지휘를 독자적으로 단행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법권 독립을 위해 판사 인사권이 대통령에 있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있듯이 검찰 인사권이라도 검찰총장에게 주어 검찰을 독립시켜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거나 간섭 없이 법대로 수사할 수 있고 그런 독립성을 확보한 검찰을 통해 ‘적폐청산’을 해나가야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헌법개정 투표를 하기로 하고 각 정당에서는 헌법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이나 여당 어디에도 감사원과 검찰의 독립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권력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야심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유사 이래 상당히 높다. 지금이 두 기관의 중립성,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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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중 전 버지니아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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