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워싱턴DC에서 무숙자 한 명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길거리에서 무숙자들을 가끔 보아도 좀처럼 대화는 못 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제법 진지하게 대화를 가졌다.
사실 무숙자와의 대화는 이 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 대화는 약 30년 전에 있었다. 당시에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버지니아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초입에서 히치하이킹 하던 사람을 내 차에 태워 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사람이 무숙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런데 무숙자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왔다. 앞에 자리가 없어 뒷좌석에 앉혔는데 혹시 무기를 꺼내 위해를 가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이유로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고, 정신질환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이제 와서 다시 차에서 내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은 DC까지 간다고 했다. 나는 DC를 거칠 필요는 없었지만 라이드를 주는 김에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무숙자 모습으로 히치하이킹도 쉽지 않고, 차로는 가까운 거리라도 그 사람의 경우 걸어서 간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왜 DC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 곳의 생활환경이 더 낫다고 했다. 무숙자들의 사는 환경이 어디든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나름대로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큰 이주를 하는 셈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 무숙자와의 대화 기회는 내가 다니는 교회 학생들의 무숙자 대상 봉사와 전도 활동에 동참하면서 가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따끈한 국과 샌드위치를 준비해 대접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소개한다. 내가 그 활동으로 DC까지 나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에 두 명씩 짝지어 무숙자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학생 한 명과 함께 어떤 벤치에 앉아 있는 한 흑인 중년 무숙자에게 다가갔다.
먼저 내가 내 이름을 밝히고 악수를 청했다. 그 사람도 자기 이름을 대고 내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출생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알렉산드리아란다. 이에 알렉산드리아라면 내가 처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았던 곳이고 나는 거기서 TC 윌리암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러자 나에게 언제 졸업했냐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77년이라고 하자 내 얼굴을 잠시 쳐다 보더니 자신은 1978년에 졸업 했단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이 1979년에 졸업했다고 하자 자기 누나는 나와 동기란다. 원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가. 그는 고등학교 때 오케스트라 멤버였고 합창단원이었다고 한다.
왜 무숙자가 되었냐고 어렵게 묻자 20년 이상 수퍼마켓에서 일을 했었는데 엉치뼈와 무릎에 관절염을 앓아 그 일을 계속 할 수 없어 직장을 잃었다고 했다. 장애 수당은 신청해 놓았는데 관계 정부 부처의 일처리가 너무 느리다고 했다. 앞으로는 사무직 일을 하고 싶어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단다. 감사한 것은 인근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오전 8시 예배 성가대에 대원이 12명인데 그 중 7명이 무숙자란다. 그러면서 다음 날 부를 성가곡 선정에 관해 얘기 하는 것이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던 것을 기억하며 다른 무숙자 성가대원들에게 현재의 처지를 바로 그 광야 생활이라고 비유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나는 할 얘기가 없었다. 대신 그 사람에게 나와 내 옆에 서서 얘기를 듣고 있던 학생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그렇게 셋이 손을 잡고 기도했다. 무숙자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나는 오히려 그로부터 큰 위로를 받고 돌아 왔다.
집에 와서 고등학교 앨범을 열어 보았다. 거기에 그 사람과 그 누나의 사진들이 있었다. 40년 전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가 지휘하는 성가를 듣기 위해 조만간 그 교회에 찾아 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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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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