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해변~미조항~물건마을… 해안도로엔 은빛 물결 살랑
바다든 섬이든 하늘이든, 금산산장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린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 유일한 산악공원이자 최고 전망대다.
금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잡은 보리암으로 아침햇살이 번진다. 보리암은 소위‘기도발’이 잘 먹히는 3대 관음도량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바위 절벽에 바짝 붙은 금산산장. 금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되기 훨씬 전인 1950년대에 지었다.
주세붕의 글이 새겨진 문장암, 원효가 화엄경을 읽었다는 화엄봉, 진시황의 아들이 유배된 곳이라는 부소암, 신라 고승들이 수도한 좌선대…. 이렇게 이름 붙인 자연조각품이 무려 38개. 남해의 끝자락 금산(705m)은 그리 높지도 넓지도 않지만 만만한 산도 아니다. 곳곳에 흩어진 기암괴석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과 바다와 섬 풍경은 더없이 넓고 푸르고 아름답다.
최고의 다도해 전망대 남해 금산
동트기 두어 시간 전부터 헤드랜턴 착용하고 어둡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했다면 아마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은 내지 않았을 것이다. 남해 금산은 정상부근까지 찻길이 나있다. 복곡2주차장에 차를 대고 넉넉잡아 20분 정도 걸으면 정상이다. 새벽 운해가 산과 바다를 감싸는 장관은 없었지만, 엷은 구름을 뚫고 번지는 기운이 산정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금산의 바위 봉우리들을 붉은 비단으로 뒤덮었다.
그렇다. 금산(錦山)은 비단을 두른 산이다. 그것도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 후 조선 건국의 대업을 이룬 이성계가 하사한 비단이다. 마음이야 실제 비단으로 장식하고 싶었겠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전까지 금산은 한밝산, 보타산, 보광산으로 불렸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막을 짓고 화엄경을 읽으니 서광이 발했다는 얘기에서 유래한다. 정상 아래 가파른 바위 사이에 층층이 자리잡은 보리암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런 사연으로 보리암은 소위 ‘기도발’ 좋은 사찰로 소문나 있다.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성지로 불린다. 관음보살은 불교에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즉 기도를 들어주는 보살이다.
보리암 외에도 금산에는 벼랑 사잇길을 따라 요모조모 볼거리가 많다. 보리암에서 서편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금산산장이 어미의 품에 매달리듯 가파른 경사면에 껌 딱지처럼 찰싹 붙어 있다. 국립공원 안에 숙박시설을 짓는다면 요즘이야 큰일 날 소리지만 이 건물은 1950년대에 지었다. 두 사람 누우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방도 비좁고, 이불을 빼면 편의시설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는, 하룻밤 묵어 가는 역할에만 충실한 수준이지만 1980년 무렵까지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숙소로 사용할 정도였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금산산장이 아니라 ‘부산여관’으로 더 유명하다. 요즘도 일출을 보려는 길손들에는 유용한 잠자리다. 발 아래로 한 뼘 논밭 사이로 들어선 정겨운 마을과 상주해변, 다도해의 섬들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바다 전망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KBS의 ‘1박2일’에 소개된 후부터는 출연진이 음식을 먹은 벼랑 끝 탁자가 여행객들의 촬영포인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금산산장에서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열쇠구멍 모양으로 가지런히 석축을 두른 망대(望臺)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이용한 곳인데, 지금은 금산의 38경과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를 두루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로 활용된다. 상주해변 인근의 호도, 애도, 조도뿐만 아니라 멀리 통영의 사량도, 욕지도, 연화도 등의 섬들까지 올망졸망 한눈에 들어온다.
은빛 눈부신 물미해안도로 봄 바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못지않게 금산을 감싼 해안선은 봄 기운으로 눈부시다. 상주해변과 미조항을 거쳐 물건마을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남해에서도 경치가 빼어나 ‘물미해안도로’로 불리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겨우내 해풍을 맞으며 푸르름을 유지해온 시금치 밭 너머로 봄 물결 넘실대는 바다 풍경이 이어진다.
이 길에서 백련마을과 상주해변, 항도마을은 누구나 한번쯤 쉬어 가고픈 곳이다. 백련마을은 산 중턱에 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 보는 모습이 정겹다. 다랑이 논밭 아래로 알록달록한 지붕을 인 마을이 펼쳐지고, 바로 앞바다의 작은 섬 노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노도는 서포 김만중(1637~1692)이 말년에 3년간 유배생활을 한 곳으로 초옥과 우물 터 등 그의 체취가 밴 유적과 문학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백련마을에서 약 6km만 더 가면 상주해변이다. 남해에서는 ‘상주은모래비치’로 부른다. 해변의 잔모래가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곱다는 의미다. 바로 앞 나무섬(목도)과 돌섬이 자연방파제 역할을 해 수면은 언제나 잔잔하고, 햇살이 비칠 때면 살랑거리는 물결도 은빛으로 반짝인다. 리아스식 해안이 빚은 2km 반달형 백사장은 방풍림인 송림과 어우러져 더욱 평화스럽다. 7080세대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포크듀오 ‘둘다섯’의 ‘밤배’도 상주항의 잔잔한 물살을 헤치고 야간조업을 나가는 어선 불빛을 보고 지었다고 전한다.
해안도로에서 보는 쪽빛 바다 어느 한곳 빠지지 없지만, 항도어촌체험마을의 바다색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마을 앞 초록빛 바다는 방파제를 벗어나며 점점 짙어져 푸른 물결로 넘실댄다. 우측 방파제와 연결된 2개의 작은 봉우리도 소나무가 빼곡해 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봉우리 꼭대기 산책로를 오르면 양식장 부표를 피해가며 미조항으로 드나드는 어선들의 풍경이 한가롭다. 물건 방향 해안도로 전망대에서는 이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해여행 코스 짜기]
●남해는 제주 거제 진도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사천에서 삼천포ㆍ창선대교로 연결되고, 하동에서는 남해대교로 이어져 있다. 독일마을과 금산이 목적지라면 사천에서 들어가는 것이 가깝다. 독일마을에서 금산까지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면 내륙을 통과하는 빠른 길로 안내한다. 물미해안도로를 타려면 미조항과 상주해변을 차례로 입력하면 된다.
●금산은 중턱에 복곡1주차장(150대), 정상부근에 2주차장(75대)을 운영하는데 주말과 성수기에는 주차난을 각오해야 한다. 2주차장은 여유가 없는 경우 통제한다. 이때는 1주차장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주차료는 각각 4,000원. 마을버스 이용료는 왕복 2,000원.
●봄철 남해의 별미는 멸치쌈밥이다. 시래기와 함께 자작하게 지져 나온 통 멸치를 식성에 맞게 상추나 깻잎에 싸먹는다. 된장을 살짝 푼 국물 맛이 구수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은성쌈밥을 비롯해 독일마을 인근의 삼동마을에 멸치쌈밥 식당이 여럿 있다. 1인분 1만원, 2인분 이상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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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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