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가슴에 고여 사무치는 것들을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야 살 것 같았다. 만삭의 임신부가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듯, 17년 전 가을에 워싱턴 문예창작원을 찾아갔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9시 30분까지 1년 동안 참 열심히 문학 강의를 들었다. 시든 풀이 단비를 만난 듯 문학은 황폐해져 가는 나를 살려준 영혼의 종합비타민이다. 아직도 그때 강의시간표를 간직하고 있다. 밤늦도록 시, 시조, 수필, 소설, 문예사조, 문학개론, 기호 문학, 작가와의 만남, 문장 작성법, 맞춤법/띄어쓰기 등의 강의를 들으며 문학의 여러 장르를 배우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무엇이든 맨 처음 시도해보는 것은 첫사랑처럼 풋풋하고 서툴러서 오히려 보석처럼 소중한 무엇이 있다. 습작 기간을 통해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내 분신 같은 작품들이 늘어갔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걸 나는 믿는다. 2002년 11월 30일 문예창작원을 수료했다. 그 이듬해 1월, 워싱턴 한국일보에 ‘워싱턴 여류시인 유양희 본국 문단에 등단, 순수문학 1월호 시 게재 축하 모임 열려’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과 함께 신문을 통해 내 이름과 사진을 보는 순간 참으로 기뻤다. 응모한 10여 편의 시 중에서 ‘꿈’, ‘모국어’, ‘출근길’, ‘환청’, ‘시 I. 시 II’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당선 소감을 “오랫동안 표류하던 나룻배가 등대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살면서 느끼는 어떤 목멤, 지난날에 대한 회한, 아름다운 것들의 뒷모습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마다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걸 다시 읽으니 그때의 감회가 새롭다. 등단 후 2003년 1월에 워싱턴문인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2003년 12월에는 한국수필을 통해 ‘인연’과 ‘오리 생각’이 당선되어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수필은 미국에 이민 오기 전, 문화센터에서 1년 정도 습작 지도를 받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등단 작품이 실린 한국수필에 쓰여 있는 당선 소감에는”이제야 비로소 저 자신이 된 것 같은 이 기쁨을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도 늘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가 느껴질 때마다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현실의 나는 늘 가짜 같아서 언젠가는 진짜 내가 되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진짜‘나’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내 전부를 던져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에 몰두해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이야말로 제게 있어서는 문학이며 그 중에서도 수필입니다.”라고 했다. 문학에 대한 그 시절의 열정이 새삼 그립다.
주변에서 아는 이들이 이젠 책을 한 권 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 동안 쓴 글들을 책으로 엮어 이름표를 붙여줘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늘 생각했으나 추구했던 만큼 글은 많이 쓰지 못했다. 써놓은 글도 성에 차지 않아 책을 낼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내 글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을 내 눈높이가 인정하지 않는 것도 교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막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제목을 뭐라고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워싱턴 민들레>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집마다 푸른 잔디에 노랗게 피는 민들레 꽃들을 볼 때면, 남의 땅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우리 이민자들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뽑힘을 당할지언정 남의 집 뜰에서도 당당하게 꽃을 피우는 그 민들레의 호적등본을 떼어보면 어쩐지 나와 같은 이민계열의 족보를 지녔을 것 같아 <워싱턴 민들레>를 책 제목으로 정하기로 했다.
올 봄에는 민들레가 꽃 피기 전에 나의 첫 수필집 ‘워싱턴 민들레’를 출간하게 될 것 같다. 매월 워싱턴문인회 글 사랑방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앨리스(딸)가 엄마가 가르쳐준 한글 실력으로 기꺼이 원고를 타이핑해줘서 이 책의 출간이 가능했다. 좀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워싱턴문인회 문우들과 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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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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