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 아동성학대 미온 대처·교회 내 낮은 여성지위 등에 비판 목소리도
▶ 교회 내 남녀차별 문제 해소·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 과제도 산적
미사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AP Photo/Alessandra Tarantino)
2013년 3월 13일, 비가 부슬부슬 오던 밤, 자진 퇴위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가톨릭 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조하게 교황 선출을 기다리던 군중에게 '부오나 세라'(좋은 저녁입니다)라는 평범한 인사말을 던지는 것으로 전 세계 1억2천만 가톨릭 수장으로서의 첫 임무를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81)이 13일(현지시간) 즉위한 지 꼭 5년을 맞았다.
평생을 빈자를 위해 헌신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 즉위명을 삼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초부터 청빈한 삶의 자세와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는 낮은 행보로 지금까지 교황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역대 가장 사랑받는 교황 중 1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로마 외곽의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수감자들에게 자신 역시 감옥에 수감될 수도 있었다며 "왜 내가 아니라 당신들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나, 교회가 금기시 해온 동성애자들에게 '내가 누군데, 이들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자문한 일화 등은 교황의 남다른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톨릭 교리에 충실한 전형적인 교황의 모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리는 전형적인 예로 인식되고 있다.
호화로운 교황 전용 관저를 사양하고 다른 사제들과 더불어 바티칸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등 검소한 삶을 실천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교회가 나아갈 길로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표방하며 교회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랫동안 돈세탁 등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져 왔던 바티칸은행의 개혁, 교황청 회계 시스템의 현대화, 교황청 관료 조직 쿠리아의 단순화 등 교황청 행정 전반에 대한 개혁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 세계가 다툼과 반목을 해소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갈 것을 끊임없이 주문해온 교황은 쿠바와 미국의 역사적 관계 개선, 콜롬비아 반군과 정부의 평화 협정 체결 등에서 막후 역할을 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 때에도 관련국이 대화를 매개로 위기를 평화롭게 풀어갈 것을 촉구하는 등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온 것 역시 익히 알려진 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 변화, 난민 위기 등 지구촌의 주요 현안에 있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과감히 목소리를 내왔다.
교황은 다국적 기업이 자연 자원을 착취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빈국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과 기후 변화 저지 노력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자는 어리석다"며 화석 연료 사용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부정하며 파리기후 협정에서 탈퇴를 결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부모 슬하에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이도 한 교황은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이 전쟁, 기아 등을 피해 이주를 감행한 이민자들에게 벽을 세우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해왔다.
교황은 2016년 4월, 당시 지중해 난민 위기의 최전선이었던 그리스 레스보스 섬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곳 난민촌에 머물던 이슬람을 믿는 시리아 난민 3가족을 교황청에 데려와 거처를 마련해 주며 스스로 난민을 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이같은 관대한 입장은 난민 대량 유입으로 반난민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교황청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시 불법 체류 난민을 전부 송환하겠다고 밝힌 극우 정당을 비롯해 난민에 적대적인 정당들이 대거 약진, 교황의 평소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뼈아픈 부분은 사제에 의한 아동 성폭력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월 칠레 방문 길에 미성년자 성추문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성직자를 비호하는 발언으로 현지 언론과 피해자 단체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으며 취임 이후 가장 큰 비판에 직면했다.
교황은 이에 중남미 순방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으나, 사과와는 별도로 해당 성직자에 대한 옹호는 거두지 않아 교황이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범죄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이런 비판과 함께 교황청 내 보혁 갈등도 교황이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자비에 기초해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판단할 것을 강조하며 이혼한 사람과 재혼한 사람도 성체 성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교황의 진보적인 입장은 금욕과 절제에 기반한 전통적인 성윤리와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가톨릭 보수파들의 교조적인 도덕 우선주의와 자주 충돌하고 있다.
작년 2월에는 교황을 비판하는 벽보가 로마 시내에 나붙어 교황청내 극심한 보혁 갈등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밖에 최근 메리 매컬리스 전 아일랜드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지 않는 가톨릭 교회는 '여성혐오 제국'이라고 쓴소리를 하고, 가톨릭 수녀들이 추기경과 주교 등 교회의 고위 남성 성직자들을 위해 가정부 노릇을 하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폭로가 나오는 등 교회 내부의 남녀 차별 문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봐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공을 들여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 문제는 양국 관계 정상화의 주요 걸림돌로 인식됐던 중국 교회의 주교 임명 방식에 대한 합의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주교 임명 방식에 대한 합의안을 놓고도 홍콩 출신 고위 성직자가 교황청이 가톨릭 교회를 중국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등 잡음이 인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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